이미 끝난 반성문

by 썸머킹

이미 끝난 반성문



나는 제법 사랑에 재능이 있습니다.*



재능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질 수 없다. 사랑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사랑에 재능이 없다는 말도 믿는다. 그러나 사랑을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랑을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사랑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사기꾼 같다. 어떤 형태로든 복원될 수 없도록 갈기갈기 찢고 우리 집 근처 초등학교 뒤편에 가서 불살라 버리고 싶다. 라이터를 켤 때마다 그런 상상을 한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빛과 불꽃. 라이터를 끈 후에도 입구를 만지면 여전히 깜짝 놀랄 정도로 뜨겁다. 분노와 공포가 지나간 곳의 열기와 아름다움. 그 추한 얼룩을 믿는다. 나에겐 그것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견고한 재능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구멍가게에서 파는 천 원짜리 350ml 레몬 녹차. 일주일에 한 번 그곳에 가서 꼭 10개를 사 와서 마신다. 품 안에 10개를 겨우 욱여넣은 채 온몸으로 구멍가게의 문을 밀고 나갈 때마다 그 앞에서 담배 피는 아저씨들 본다. 구멍가게 옆에 있는 수선소의 열린 문 안으로 바지를 자르고 있는 아줌마 본다. 골목에서 와, 매미다!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 듣는다. 가만히 멈춰 있으면 금방 더워진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나는 자연스레 손차양을 한다. 손차양을 해도 손 사이로 햇빛이 끼어든다. 그건 초등학생들이 하는 새치기처럼 치사하고 유치해서 어쩔 수 없이 봐주게 된다. 그렇게 6월이 돌아올 때마다 여름을 용서할 준비를 하게 된다.


용서는 사랑의 이름 앞에서만 가능한 건가, 고민한다. 그러나 용서에게 다가가려면 너무 많은 비명들을 지나야만 한다. 용서는 아팠던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아이들은 점심시간만 지나면 비명을 지르고 나는 그게 즐거운 것인지 아픈 것인지 헷갈려서 매번 화들짝 놀라 창문을 열고 이리저리 살핀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비명을 좋아하는 걸까. 비명은 무섭다. 비명이 지나간 자리는 아름답다. 그래서 항상 창문을 열어두지 않고 비명이 들린 다음 잠시 멈춰 서서 고민을 하다가 창문을 여는 것이다. 비명이 없을 때, 비명의 흔적만 관찰하려고.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고 아팠는지 살펴보려고.


나는 흔적을 따라간다. 레몬 녹차는 사실 레몬 맛도, 녹차 맛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레몬이라 하기엔 너무 달고 녹차라 하기엔 너무 달다. 천 원만큼 보잘것없는 밍밍한 흔적을 좋아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다고. 이제 더는 살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기보다 나의 흔적으로서 존재한다고 느꼈을 때 그 감각을 시로 옮겼다. 시를 쓸 때의 나는 공포와 분노에게 한참 혼나서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처럼, 꼭 그 아이가 쓰는 반성문처럼, 밍밍했다.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안쪽으로 굽어 터지는 불꽃. 항상 눈앞에서만 번쩍이는 섬광. 빛. 여름의 빛. 뜨거운 빛. 땀 흘리는 빛. 치열한 빛. 바보처럼 빛을 그러쥐려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게, 내가 뭘 잘못했더라…… 시를 쓸 때면 반성문을 쓰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짓을 저질러버렸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보다 이미 태어나버린 일에 대하여.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려고 쓰는 것 같다. 반성문을 읽고 나를 용서하는 건 누구인가. 나를 사랑하는 건 누구인가. 나의 흔적을 그러쥐는 건 누구인가. 나의 비명을 안아주는 건 누구인가. 나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몇 번씩 불에 데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영원, 영원히 같은 말은 싫어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다. 가족은 나에게 변하지 않는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재능이고 재능은 타고난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사랑에 재능이 없다. 아니야. 반성문 지우고 다시 고쳐 쓸래. 나는 사랑을 갖지 않은 것이다. 그 실패는 내 의지다.


사랑을 믿었었지만 이제는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믿었던 사랑은 얼굴을 환하게 밝혀주는 불이 아니라 귀나 목에 잘못 갖다 댄 고데기처럼 나를 훼손시키는 것이니까.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다. 통각은 상처 이후에 옵니다. 반성문은 모든 잘못을 저지른 후에 쓰는 것입니다. 흔적은 고칠 수 없습니다. 흔적은 반성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재능입니다. 반성은 재능입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재능들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집이 세 번 바뀌었다. 기숙사와 셰어하우스와 원룸. 재밌는 건 각 집에서 보냈던 여름의 풍경이 다르면서도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본다. 창문을 때리는 도끼 모양 비 본다. 쏴아아쏴아아를 듣는다. 여름이다. 평생 용서할 준비만 한다. 준비만 하다가 그렇게 여름이 지나갈 것이다. 세제를 넣을 땐 다우니 냄새가 났는데 빨래를 다 말리고 나면 걸레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미친 듯이 웃는다. 주말에도 비명이 들린다. 이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용서하기 싫다. 그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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