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반성문

by 썸머킹

다시 쓰는 반성문




밥을 먹다가 혀를 씹었다. 이것으로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째다. 처음에는 혀의 오른쪽을, 이번에는 혀의 왼쪽을 씹었다. 내 혀를 씹는 건 무엇일까 양치 후에 손가락으로 더듬어봤다. 그건 송곳니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어금니였다. 송곳니는 치아 중에서 가장 뾰족한 치아라고 하는데 내 송곳니는 가짜라서 뾰족하지 않은가 보다. 어떤 인간도 송곳니를 4개씩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송곳니 2개와 가장 뾰족한 2개의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송곳니를 4개 가져서 남들보다 혀를 자주 씹는 거겠지.


악덕 업주냐?

꿈에서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1인 사업장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혼자서 물건을 만들고 팔고 전부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게 악덕 업주냐고 물었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사장이자 직원이라고. 밑천을 전부 다 털어서 판다는 것은 고작 진짜보다 더 뾰족한 가짜와 모조품이었다. 그런데 진짜보다 효과가 좋아서 인기가 많은 것이었다. 사세요. 여기 있어요. 이거 다 가져가세요. 전부 진짜예요. 송곳니보다 뾰족한 어금니에 찔린 혀로,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발음이 질질 샜다. 그렇게 말하다 보면 또다시 찔리곤 했다.


며칠 전에 꿈에 나왔던 그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프로이트에 공부하고 있는 친구였고 나는 1학기에 들었던 수업 과제 때문에 프로이트를 공부했었다. 갑자기 자연스럽게 프로이트의 기제를, 그중에서도 억압을 논했다. 여러분도 알아가세요. 프로이트가 제시한 기제 중에 억압은 부정적으로 막는 것을, 억제는 긍정적으로 막는 것이랍니다. 무엇을 막는 거냐면 의식이 받아들이기 힘든 충동과 생각을 무의식의 방에 있는 힘껏 밀어 넣고 문을 잠그는 것이랍니다. 언젠간 열어줄게. 곧 열어줄게.


죽어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연주하기 전까지는. 초등학교 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 생각난다. 곡 하나를 배운다. 그리고 그 곡을 일정 횟수 이상 연주하기 전까지는 검사를 받을 수가 없다. 칭찬 포도 스티커라고 불리는 노트 칸이 있었다. 진짜 스티커는 없지만 나는 한 번의 연주를 마칠 때마다 포도 한 송이에 색을 칠하곤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서 연주하지 않고 색을 칠하고 검사를 받으면 곧 들통나곤 했다. 나는 속이는 것에 실패했고 새까맣게 칠한 포도들을 다시 지워야 했다. 거짓말은 지저분해서 꼭 흔적이 남는다. 다 쓴 반성문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쓸 때처럼. 전부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그렇지 않았다는 것처럼. 전부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글씨를 겹쳐 쓰게 되었을 때처럼.


저번에 썼던 반성문을 구독자에게 발송하고, 브런치에 올리고, 스티비 아카이브 링크를 공유했을 때 나를 꾸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쓰라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화내고 다시 쓰라고 뾰족한 연필을 꽂아 넣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송곳니를 4개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 나를 부추겼을 뿐이었다. 자, 여기에 칭찬 포도 스티커는 없다. 네가 알아서 하고 색칠해라. 보라색 색연필이나 볼펜도 없지. 너무 많이 꽂아 넣어서 길이가 짧아진 몽당연필로 전부 칠해라. 시커멓게. 포도 알 같은 건 하나도 안 보이게. 포도인지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그리고 다시는 지우지 마라. 다시 쓰지도 마라. 어차피 반성은 이미 끝났으니까. 시커먼 그것으로는 아무도, 너 자신조차도 속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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