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anni Oct 05. 2021

이건용 개인전을 보고 나오다 작가님과 마주치다?!

이건용 개인전 <BODYSCPAE>,  갤러리현대

  작품을 그 누구보다 찬찬히, 재밌게 감상하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는 어르신들을 보았다. 그들 옆에서 건물 외벽의 포스터를 찍고 있는데 그중 한 어르신이 아들로 보이는 이의 주차를 도우느라 내 옆에 오셨다. 방금, 아까 전시실에서 영상으로 본 그 분과 참 닮아 보였다.


  계속해서 그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혹시... 설마?’ 그는 ‘그래요, 나예요’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실제로 처음 보고, 마스크도 쓰고 있으신 데다, 도대체 그런 일이 어딨어!라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렇지만!  몇 초 생각을 가다듬고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높은 확률도 이건용 작가님이셨던 것 같고, 그렇다면 정말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1. 엄격한 통제가 가져오는 극한의 자유 [ 역 설 ]  


  나는 약간의 불면증이 있는데,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접하며 찰나의 정신적 자유와 숙면을 맛보고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철저한 금욕 속에 진리를 깨달았던 싯다르타도, 수도원의 금욕적 생활 속에 종교적 가치를 지켜내는 이들도, 육체적 통제와 금욕을 통해 진정한 정신의 자유를 맛본다. 이것이 캔버스 위에 표현되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2. 육체적 한계와 우연성의 충돌 [ 표 현 ]


  작가님의 <Bodyscape> 연작은 자연스럽게 팔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만 이뤄지는 붓질과,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물감이 매 순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나는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매번 다른 붓질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질감, 개별적 움직임에 따라 흘러내리는 물감까지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각도와 시각을 한 번에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가 있다면(데이비드 호크니), 캔버스 자체의 개념을 파괴했던 작가도 있었고(윤향로), 이렇게 캔버스를 대상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한정 지음으로서 통제 속에서만 발현될 수 있는 표현의 무한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해내었다.      


한 곳에서 서서, 팔이 닿는 곳 까지만 이루어지는 붓질, 그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컨버스처럼 뻗어나가기도 하고, 가운데 놓인 하나의 중심선이 되어 좌우로 원을 그리기도 한다.


나 역시 그림의 중간에 서서 팔을 뻗어 보았다. 붓질이 시작하는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함께 원을 그려보았다.


3. 냉동보관 박스 위에 그려진 선


  또한 이건용 작가님은 냉동보관을 개의치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역시 캔버스의 개념에서 벗어나 일반 포장 박스 위에 손길을 얹는 것이다. 종이박스 위 색연필을 활용한 작품은 너무 귀여웠고, 중간중간 포장재임을 알아볼 수 있는 문구들(~우체국, 냉동보관 등등)이 오히려 작품의 동 시대성을 통한 공감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전시된 ‘두가헌’은 참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맨 왼쪽 작품에는 '냉동보관'이 비쳐나오고, 가운데 그림은 색연필이 인상적, 오른쪽 작품 배경에는 '우체국' 직인이 보인다.

       




  이건용 작가님은 작년에는 미술 전문 온라인 플랫폼인 ‘아트 시 뱅가드’의 주목할만한 예술가에 선정되셨고, 내년에는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에도 그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케이옥션 등 미술 경매시장에서 핫한 분이시라 한다. 나를 전시에 이끈 데에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 연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80이 넘은 멋있는 어른이 구축한 철학을 캔버스와 물감을 통해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에 더해 전시회장 앞에서의 마법 같은 만남은, 우연이 가져다준 잊지못할 선물이었다.                                                   



덧)

사실 오늘 새벽에는 화재경보가 울려 온 건물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소동을 겪었다. 삶의 주마등을 살짝 본 듯 했다. 지금은 언제나 만석이던 블루보틀의 창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도 자리가 나긴 나는구나. 이 모든 것, 마법 같은 것은 매한가지이다.     



* 이건용 개인전 <BODYSCPAE>, 09.08-10.31. 갤러리현대(경복궁/안국역)

  - 네이버 예약을 통해 방문 가능

매거진의 이전글 알베르 까뮈 <이방인>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