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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anni Mar 16. 2023

청첩장에 여자이름부터 넣으려면 투쟁이 필요하다

신부이름 먼저 적는 게 오탈자가 아닌 세상이 되길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다. 수신지 작가님의 그림에서 여자이름이 먼저 적힌 청첩장을 보며, 내가 벌였던 조용한 투쟁(?) 대하여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청첩장을 3판 찍다


항상 모든 순서와 양식이 남자부터 가는 것, 뭐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남모를 자연의 순리가 있겠지만서도 내 지인에게 나눠주는 청첩장만은 내 이름이 먼저였으면 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처음엔 청첩장을 2판으로 만들어

1)(우리집 용) 신부-신랑순,

2) (시댁용) 신랑-신부순으로

만들어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 놀랍게도 아빠가 이 청첩장을 반대하셨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내가 새벽까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야단은커녕 데리러 오는 사람이고, 어른들 다 모인 장소에서 그 어떤 혁명적 소리(?)를 해도 한 번도 뭐라 하신 적 없는 분, 내가 어떤 논리와 주장을 펴도 그 어떤 비난, 비판, 꾸지람도 해본 적 없으신 현자와 같은 분이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 인생 처음 대들었던 사람이 나였지만 부모님께 혼난 기억은 없다.)


그런 아빠는 동시에 원리, 원칙, 규범을 지키는 것엔 철저한 분이신데 이는 보수 끝판왕 할아버지의 장남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급진적 인척 하면서 규칙은 꼭 지키는 모범시민^^이니까


어쨌든 아빠께서 청첩장 이름은 남-여 순으로 가는 것이 순리라고 하시는 바람에 청첩장에 1개의 판을 더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1) 남-여 순 (시댁&남편용)

2) 남-여 순 + 대절버스 안내문 (부모님 용)

3)여-남 순 (내 거)


과거의 나였다면 ”내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세욧!” 하고 빼액거렸겠지만 결혼은 나 뿐 아닌 모두의 것이라 생각하고 유연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청첩장 양식에서 남녀 순을 바꾸면, 호칭 부분에도 “직접 입력”을  선택하고 입력해야만 하고 디자인판(초안)에서는 오탈자를 확인하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상단의 오탈자 확인문구를 볼 수 있다. 장녀, 차남 같은 용어를 쓰고싶지 않으면 딸, 아들이라고 표기해도 된다. 난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


관례와 다른 경우 이므로 오탈자 안내문구는 업체에서는 당연히 나타날 법하다. 하지만 그것이 관례가 아니거나, 정해진 순서 외 직접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근 시일 내에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해당 청첩장을 회사에 뿌려야 하는데, 또 연세 지긋한 분들이 괜히 한마디 하시면 어떡하지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청첩장 모임을 하면서 이 걱정은 바로 접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신랑-신부 이름 순서를 신경 쓰지 않더라.


그리고  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담 더더욱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2. 모바일 청첩장도 시도해 보다.


모바일 청첩장에서는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다. 시스템상 입력해서 나타나는 신랑, 신부 정보 외에도 이곳, 저곳 내가 스스로 입력할 수 있는 재량이 많았다.


그래서 재량이 주어지는 곳에서는 무조건 내 이름부터 써넣어보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처음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링크제목!


내 이름 먼저 넣은 모바일청첩장 안내문!


아빠도 이 부분을 조금 걸려했지만 막상 클릭하면 또 남편이름이 먼저 나오기도 하니 수용해 주었다. 시댁에서는 신경도 안 썼다.(최고야)


별도로 모청 제목도 “***, *** 결혼합니다” 문구가 뻔한 듯하여 사진에 맞추어 “***,**** 가보자고!”라고 써보았다.


역시 아빠의 반대가 있어서 좀 고민하다가 1) 링크로 공유시, 2) 카카오톡으로 공유시 뜨는 제목을 달리했다.  어른들께는 링크로 공유하여 “결혼합니다”가 뜨도록, 친구들에게는 카카오톡으로 공유하여 “가보자고”가 뜰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런 문구도 대부분 신경안쓰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


가보자고!!!!!!


3. 그 외에도


여자 사회자, 신부 먼저 입장, 신부의 하객맞이 등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


신부의 하객맞이에 대한 나의 고민은 이전의 ‘로망’ 관련 글에서 정리했고, 사회자는 예식장의 전문 사회자를 썼더니 당연히(?) 남성분이셨다. 신부가 먼저 입장하는 것도 고민하다가 주인공이 되고픈 욕심에 버렸고, 신랑신부 동시입장은 아빠와의 입장(이에 대한 고민도 ‘로망’ 글에 있다)으로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냥 관례를 따르는 것 보다 개별 선택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혼자금을 반반했다. 임의로 번갈아가며 결제했는데, 지나서 엑셀을 정리해 보니 정말 정확히 반반이었다. 물론 집과 가전, 혼수로 범위가 넓어지면 반반이 안 되지만(흑흑) 그래도 결혼 후 대부분 맞벌이를 할 테고 함께 집안을 꾸려나갈 것이다. 함께 양육을 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시작부터 조금씩 변주를 줘 보는 것이 어떨까?  물론 결혼의 또 다른 주인공인 부모님과 유연하게 논의하고 공유해 가면서 말이다.


나만의 색깔과 고민을 조금씩 담아가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여성의 날 하루 뿐 아니라 내 인생을 구성하는 하루, 하루, 그렇게 매일.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식 로망: 이룬 것, 못한 것, 고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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