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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ul 18. 2021

보다: 파란 돌

2021년 1월 13일

충주에서 J가 내려왔다. 다음날 아침 J가 비밀 해변을 가고 싶다고 했다. 

‘비밀 해변은 해 질 녘에 석양을 보러 가는 게 최곤데!’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다른 시간대에 가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전 11시쯤 아영과 J와 나는 비밀 해변을 향했다. 


비밀 해변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왼쪽은 만조 때 물이 차면 드러나는 천연 수영장이 있는 곳, 오른쪽은 탁 트인 바다와 석양이 보이는 곳이다. 나와 아영은 주로 왼쪽으로 갔지만 그날은 평소와 다른 시간대에 비밀 해변에 온 탓인지 나는 친구들에게 오른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해 질 녘의 비밀 해변은 태양이 항상 오른편 수평선 끝에 걸려있다. 그날의 태양은 비밀 해변을 향해 걷는 우리와 마주하는 위치에서 반짝반짝 맑게 빛이 났다. 빛의 위치가 달라짐으로 비밀 해변의 분위기는 아예 달랐다. 밝고 활기가 넘쳤다.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왼편으로 가볼래?” 

아영이 말했다. 가파른 절벽이고 볼만한 게 있겠나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그날은 안 가본 곳을 가보는 날인 거 같아 “가보자!”라고 대답했다. 지나와 생각해보니 태양이 정면으로 비추는 곳이기도 했다. 태양을 향해 가고자 하는 본능적인 마음도 있었던 걸까. 


평소의 왼쪽은 천연 수영장과 돌 해변이 시선을 끌었다. 오른쪽은 작은 만과 투명한 바다, 석양이 시선을 끌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었던 태양이 정면으로 비추는 그곳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수평선이 가장 넓게 보였다. 뒤에는 원형으로 회 감으며 생긴 돌벽과 웅덩이가 있었다. 


우리는 한 손, 한발 내딛으며 절벽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어느 순간 꿈에서 본 바위 끝과 하늘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그 돌을 보는 순간 “아! 꿈에서 나는 이것을 본 거구나”라고 느꼈다. 돌은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끝자락에 활기찬 파도를 맞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봤던 각도를 찾아 최대한 똑같은 위치에 자리 잡아 앉았다.  “내가 하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다였구나!”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파도를 맞고 있는 그 바위와 파도를 바라봤다. 정말 신기하고 또 한편으론 울적했다. 꿈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그럼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가?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쉽지 않을 만큼 머물렀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한두 발 자리를 옮기는 순간 그 바위는 더 이상 내가 꿈에서 봤던 그 바위의 모습이 아니었다. 웃기게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뒤로는 바위 능선이 길고 거대하게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바위였던 것이다. 


천연 수영장이 있는 곳까지 돌아 돌아 이동했다. 익숙한 왼편의 장소로 오니 꿈에서 본 바위의 형태는 이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다시 한번 꿈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잠시 햇빛을 맞으며 몸을 바위에 딱 맞추어 기댔다. 울적한 마음이 더 커지려는 찰나였다. 내가 본 게 다가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자책의 마음이었는지. 아침에 아영이 나에게 ‘바다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했던 말부터 차근차근 내가 주고받았던 말과 나의 마음을 돌아봤다. 줄곧 왼편에서 내가 경치에 감탄할 때 아영은 종종 나에게 ‘여기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멋진 것들이 보여’라고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마다 ‘응~’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곳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두 갈래 길에서 빠르게 갈 수 있는 오른쪽을 향해 돌아가는 절벽길이 그다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나의 행동들을 탓해야 하나 싶었다. 


감정이 파도 마냥 크게 일렁거렸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고 햇빛을 양껏 쬐었다. 차가운 바람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내가 몸을 기댄 바위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나를 평안하게 품어주었다. 

서서히 울적했던 마음이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감을 느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로 다가왔다.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다른 시선으로 보면 또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야.


하늘이 바다일 수도 있어. 

바다가 하늘일 수도 있어. 

정상의 끝이 바위의 모서리 끝일 수 도 있어. 

바위의 모서리 끝이 정상의 끝일 수도 있어. 


나는 무언가를 계속 정하고 싶어 한다. 

여긴 이게 좋아. 이건 이거야. 저건 저거야. 

나의 시선에 고정되어서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할 때도, 무시할 때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믿고 싶은데로 믿을 때도 있다. 


모든 것은 멈춰있지 않고 변하는데 

나는 무언가를 멈추고 바라본다. 멈춘 채로 간직한다. 


변하는 것을 변하는 데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나 또한 계속해서 흐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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