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 ‘삽’을 이온겸님이 낭송해주셨습니다. 근사한 음성으로 제 시를 낭송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종섶
오래 쓰면 쓸수록 뾰족한 그곳이 둥그런 엉덩이처럼 변해가는 삽, 처음부터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삽날은 흙을 갈아엎고 퍼 나르는 동안 닳고 닳아 유순하게 변화되기까지 수없는 세월을 홀로 울며 견뎌야 했다
조금씩 추해지는 표정을 감추려고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잠시뿐, 쓰레받기로나 쓰이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위협적인 꼭지 부드럽게 깎여 거름더미라도 한 짐 푸짐하게 퍼주고 싶은 착하디착한 곡선으로 변한 것이다
땅을 파면 팔수록 산봉우리 닮아가고 모래를 뜨면 뜰수록 물의 흐름 배워가는 삽 한 자루의 성실한 노동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싶은 날, 평생 맞서기만 하던 땅위에 서서 일방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사과라도 하듯 자근자근 눌러보는 삽날의 애교
나의 노년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어 몇 군데 짚이는 곳을 슬며시 만져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남을 찌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밤 땅을 파기 위해 삽질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땅을 파야했던 삽 한 자루의 수행이 떠오른다
땅은 삽날을 갈아내기 위한 숫돌이었을까 강할수록 부드러운 숫돌을 사용해야 한다며 꼬리뼈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버린 그곳을 내놓고 다니는 짐승 한 마리, 모든 것을 달관한 자세 하나 얻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도 사나운 포효도 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