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제목 끝에 붙어있는 ‘장(葬)’은 장례를 의미합니다. ‘수목장’과 같은 뜻입니다. 지금은 품절된 첫 번째 시집에 들어있는 시입니다.
이종섶
우리 부부 죽으면 봉분 대신 나무의자 하나씩 놓아다오 낮에는 햇빛이 놀다 가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잠들다 가고 적적할 땐 바람이 쉬었다 가게
계절이 바뀌면 자리만 옮겨다오 산등성이에 올라 천지에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고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앉아 허벅지 통통 두드리는 도토리 소리도 들어보게
겨울이 되면 서로 마주보게만 해 다오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늬 에미가 이제사 불쌍하게 보여서 그러는구나
어쩌다 그런 애비 에미가 생각나거든 새끼들 데리고 한번쯤 다녀가거라 보고 싶었던 손주들을 무릎 위에 앉혀보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느냐
가는 길에 의자를 어떻게 놔야 할지 묻지 말고 너희 좋은 대로 하거라 이참에 우리도 자식 놈이 베푸는 호사 좀 누려 볼란다
쓸쓸할까 뒤돌아보지는 말거라 밤낮으로 의자에 앉았다 가는 동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지 않느냐
상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뛰는구나 숲속에 놓여있는 의자 두 개 그 아늑한 풍경 속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