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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섶 Dec 15. 2021

감정손해보험 - 이종섶 시, 오새미 낭송

지금까지는 시집에 실렸던 시를 낭송해서 영상을 만들었는데요. 이번에는 최근에 신작시로 발표한 시를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오새미 시인께서 낭송을 해주셨는데요. 시와 영상에 잘 어울리는 음성으로 낭송을 해주셨습니다. 영상은 푸른하늘 bluesky~tour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음악이나 악기를 하시는 분들이 서로 콜라보를 하시는데요. 푸른하늘 bluesky~tour 채널의 경우는 저와의 콜라보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감정손해보험     

이종섶     


노후에 맞닥뜨리게 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노후가 아니더라도 어느 날 사고처럼 다가올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서     


감정손해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한 달에 한 번씩, 또는 그 이상의 기회를 만들어 보험료를 지불한다     


성실한 납부자, 그러나 가난한 납부자

돈이 많다면 감정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진 게 없으니 실비 보상정도의 감정보험이라도 들어놔야 안심이 된다     


혼자라는 것, 친구가 없다는 것

이대로 흘러가면 어느 순간 감정의 대형 사고에 직면하게 될지 몰라,

그 내상의 두려움을 아는 자로서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의 외로움과 내일의 쓸쓸함이 그때마다 보험료를 인출할 것이다

감정보험에 일찍 가입해서 다행이다     


오늘의 감정을 견디기가 쉬워졌다     


https://youtu.be/s7akH9bmgPs


▶ 오새미 시인은 시집 두 권 ‘가로수의 수학 시간’과 ‘곡선을 기르다’를 출간했습니다. 아래에 오새미 시인의 시 영상과 시 한 편, 그리고 그 시 해설을 소개해 드립니다.   

  

진통제 한 알     

오새미  

        

바람은 약물을 의지한다

별은 유기농 진통제

몸도 마음도 낫는다     


구름의 머릿속에서

와글와글 끓어오르는 바람

비늘로 붙어있던

아픈 기억이 살아나면

먹구름이 되어 소나기를 퍼붓는다     


햇빛 한 줌도 무거워

저녁이 되기도 전에 붉어지는 얼굴

별 하나를 삼킨다     


머리채를 흔드는 미루나무

통증 처방전을 받아

햇살 치료를 시작한다     


별 한 알로 해결하는 세 끼 상처

비바람을 안고 걸어가는 밤

아물게 해줄 별자리를 찾는다     


한순간에 바람을 잠재우는 진통제

나무도 짐승도

어둠에 타서 마신다     


통증을 해결해주는

별들이 빛날 때

누구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둠에 별을 타서 마시는 사람     

이종섶 mybach@naver.com


온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바람은 약물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일들이 많아서 몸과 마음은 물론 감정까지 지친다. 좋은 일을 할 때도 많지만 어쩌다가 잘못 휘말려서 큰 피해를 입히기라도 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좋은데 자기 색깔이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부화뇌동만 해서 더위의 하수인도 되고 추위의 앞잡이 노릇도 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상태가 되어 “약물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바람이 의지하는 약물은 “별”이다. 별은 하늘이 내린 “유기농 진통제”라서 “몸도 마음도” 다 “낫는다”. 먹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머리를 들어 하늘만 바라보면 된다. 낮이 아닌 밤에만 편안하게 바라보면 된다.

바람이 천성적으로 힘든 것은 몸집이 없거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은 누군가를 붙잡아야 하고 무엇인가를 건드려야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동행이 있어야 하고 나쁜 의미에서는 심술부릴 대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중에 가장 친근하고 만만한 구름이 있어서 “구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와글와글 끓어오”른다. 바람의 과도한 액션 때문인지 아니면 좋아서 장난을 친다는 것이 너무 심한 탓인지 구름에게 “비늘로 붙어있던/아픈 기억이 살아나”게 하고 만다. 입조심 하지 못해 실수를 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해 표정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다. 구름이 괜스레 바람 때문에 “먹구름이 되어 소나기를 퍼붓”는 이유다.

구름을 달래기 위해 햇빛이 부드럽게 손을 내미는데 구름은 아직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지 “햇빛 한 줌도 무”겁다. “저녁이 되기도 전에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얼른 밤이 깊어져 부끄러운 얼굴을 숨기고 싶은데 밤이 깊어지기도 전에 작은 샛별이 떠오른다. 참 다행이다 싶어 구름은 얼른 “별 하나를 삼”키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표정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침에는 “머리채를 흔드는 미루나무”가 난리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바람이 꼬리를 내리며 사라진다. 바람 탓이었구나. 바람이 미루나무를 흔들었구나. 다행히 미루나무는 “통증 처방전을 받아/햇살 치료를 시작한다”. 이번 경험을 기회로 삼아 앞으로 바람에 흔들려도 “햇살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안심한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듯이 바람이 있으면 햇살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바람의 약물이 별이라는 의미는 낮에는 바람의 약물이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낮에는 약물이 없어 불안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람은 미루나무 곁에 쉬고 싶어 가까이 갔는데 약 기운이 떨어져 불상사가 터졌고, “별 한 알로 해결하는” 그 상처를 “아물게 해줄 별자리를” 기다린다.

누구라도 “비바람을 안고 걸어가는 밤”이면 몹시 불안하다. 그래서 알맞은 약들을 담아놓은 별자리 약봉지를 뜯어 “어둠에 타서 마”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바람을 잠재우는 진통”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바람이 전해주었는지 밤마다 “나무도 짐승도” 별자리 한 봉지씩 뜯어 “어둠에 타서 마신다”.

밤에는 나무도 짐승도 편안하게 쉬면서 잠을 잔다. “통증을 해결해주는” 별들의 효과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밤의 조제실에 구비되어 일년 내내 복용할 수 있다. 그 결과 “별들이 빛날 때”는 효과가 빠르고 특별해서 별 아래에서 별을 바라보는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그랬다. 죽음을 앞둔 운명을 하늘에 맡겨야 해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하늘을 그렇게 우러러보면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했고 그로 인해 “잎새에 이는” 그 작고 조용한 “바람에도” 그 사람은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바람이 미루나무 머리채를 흔들어 미루나무가 괴로웠던 것처럼 바람은 이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잎새를 흔들어 그를 괴롭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도 별을 복용했고, 그 복용 방법과 효과를 잘 알고 있어서 단순 복용을 넘어 예찬론까지 남겼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다. 별의 효능을 확실히 알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노래는커녕 복용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고까지 하는 것을 보면 별의 생약 성분 자체가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 수 있다. “죽어가는 것”까지 사랑하게 하는 성분의 위대한 힘이다. 회복한 후 자신에게 “주어긴 길을” 정상적으로 “걸어가야겠다”는 결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약물을 복용해서 해결되거나 종료되지 않는다. 기운을 차리고 회복을 해도 그런 상황은 계속 찾아온다. 따라서 그런 현실에서도 굳건하게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현실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위로도 된다. 바람이 별에 스치지 않고 별이 바람에 스치기 때문이다. 바람이 별에 스친다면 효과가 미미할 텐데, 별이 바람에 스치므로 약물의 적극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바람이 별을 의존하는 상황을 넘어 별이 바람에게 다가온 상황은 바람에게 최선이다. 바람이 일어설 수 없는 형편이어도 별이 다가와 일으켜주는 장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은 대처하기 쉽지만 내 안에 불어오는 바람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마다 바람에 쓸려 이리 넘어지고 저리 쓰러졌다. 그러니 이제 별만 확실하게 바라보련다. 그 별만이 “몸도 마음도 낫”게 해주는 것임을 진작 알았음에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곁눈질로만 보았던 자세를 고치기로 한다.

저녁마다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저녁이 되기도 전에” 먼저 “별 하나를 삼”켜야겠다. 시시때때로 상처가 생길 때마다 “아물게 해줄 별자리를 찾”아 하늘을 우러러봐야겠다. “나무도 짐승도/어둠에 타서 마”시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기 때문이다.           

약력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수상.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외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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