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나무님 영상과 제 시의 콜라보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초이나무님 영상이 제 시 ‘물 위에 쓴 편지’를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영상과 시의 콜라보를 통해 서로에게 유익과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낭송은 이번에도 오새미 시인께서 해주셨습니다. 낭송을 맡아주신 오새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 위에 쓰는 편지
이종섶
한동안 외로움을 배워야하는 가을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계곡에 호수에 강물에 제각기 써놓은 편지, 할 말은 많은데 감정은 북받쳤는지 다급하게 써놓은 나뭇잎 문장들이 뒤엉켜있다 뼈가 시린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붉은 잉크가 새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수신인을 몰라 부칠 수 없는 편지라도 후련하게 휘갈겨야 직성이 풀렸다
해마다 찾아오는 그 흔한 이별을 아직도 준비하지 못했는지 봉인도 못한 편지에선 물굽이를 지나갈 때마다 잔물결이 흘러나왔다 오래도록 대문 앞을 서성거리다 강바닥의 희미한 번지수를 찾아 가라앉았다 그 작은 흔들림에 놀라 고개를 돌리면, 여울이 지는 물의 우체국이 자리 잡은 곳마다 배달 준비로 분주한 바람의 손가락이 눈부셨다
물의 편지지가 없어 쓸쓸한 숲속 나무들은 밤하늘에라도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발아래 편지를 묻고서는 손 모아 별을 가리키며 잠들었다 머뭇거리던 거리의 나무들은 참다못해 거친 보도블록에 막힌 속을 털어놓았다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 가로수들은 위험한 아스팔트 위에 유서 같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욱 부대끼는 마음들, 한두 차례 빗물 따라 마감 시간에 쫓겨 흘러가는 편지들, 뒤늦은 편지를 부치며 달래보는 강가에서 물결 따라 흘러가는 주소불명의 사연들, 하고 싶은 말 남김없이 다 썼을까 봄이 와야 채울 수 있는 푸른 잉크, 일 년 뒤에나 쓸 수 있는 단풍 편지, 오늘도 당신이 그리워 물 위에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