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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섶 Jan 21. 2022

오십견 - 이종섶 시, 낭송

그저께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을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동영상을 한 곳에 집중해서 산만하지 않게 했구요 아래쪽에 시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서 촬영했습니다. 배경음악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1악장입니다.



오십견

이종섶

 

폭설을 맞아 어깨가 짓눌린 향나무

축 처진 팔이 힘없이 건들거리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 잎사귀를 털어버렸으면

허리까지 눈이 덮이는 날에도

가지 위엔 그리 쌓이지 않았을 텐데

겨울에도 잎사귀를 빽빽하게 달고 있으니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의 무게에

한쪽 어깨가 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기다려도 회복되지 않아

잔가지들을 낫으로 베어내고

굵은 가지는 톱으로 잘라 주는데

끈끈한 진액이 신음하며 흐르고

찰과상을 입은 향기는 아린 속을 토해냈다


한겨울에도 푸르게 지내는 목숨들이

뜻하지 않게 겪어야 하는 시련

추운 계절을 맞서다

함박눈 포화에 팔 벌린 가지를 다치던 날

잎을 떨궈 겨울을 나는 나무들 앞에서

차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수도 없었다


봄이 왔는데도 여전히 시린 어깨

두 팔이 멀쩡한지 자꾸만 확인하는 버릇


꺾이지는 않으나 쳐지기는 쉬운

향나무의 오래된 지병이었다

https://youtu.be/R4cggBvZ-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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