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가 없는 정원은 공원일 뿐이다

나를 지키는 단호한 경계선

by 하루


부르르 부르르.


아뿔싸. 약 1년 전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 이의 이름이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 화면에 떠있었다. 예상치 못한 연락 한 통에 덜컥 가라앉는 기분. 그와 함께했던 프로젝트는 책임 전가와 예민한 신경질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 조기 종료와 함께 '수고하셨습니다'를 끝으로 인연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믿었는데, 지금 그가 다시 내 담장을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문을 열어둔 채 아무나 들어와 활개 치게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짓밟히는데도 내쫓지 못하고 억지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을 테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정원을 돌보겠다고 마음먹은 정원사다. 나를 채근하듯 울리는 전화는 받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저녁이 되어서야 답장을 보냄으로써, 나는 달콤해보이는 제안을 거절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거절하지 않고 무엇이든 잘해내야 기회가 올 거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 정원을 방치하던 시절의 착각일 뿐이었고, '돈'만을 우선해 내린 결정이 내 존엄을 갉아먹는 결과는 생각보다 처참하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했다. 조금 적게 벌더라도 내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고, 내 영혼이 평온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진짜 가드닝이다.


정원에 향기가 돌고 나무가 자리를 잡으면, 예기치 않은 방문객들이 찾아오곤 한다. 무심코 가로지르는 행인부터 허락 없이 꽃을 꺾어가는 손길까지. 아무리 정성을 다해 물을 주었어도 단단한 울타리가 없다면 정원은 금세 타인의 의도에 의해 파헤쳐지고 만다. 울타리를 세우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내가 가꾼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선언이다.


우리는 흔히 거절을 공격이라 생각하지만, 가드닝의 관점에서 거절은 정원을 보호하는 당연한 행위다. 타인의 감정 쓰레기를 내 정원 한복판에 쌓아두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곤란해요”라는 정중한 말 한마디는 내 정원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튼튼한 말뚝이 된다. 이 말뚝이 견고할수록, 우리는 타인의 눈치 대신 오로지 자신의 정원을 돌볼 자유를 얻는다.


역설적이게도 울타리가 분명한 정원사가 타인에게 더 진심으로 다정할 수 있다. 내 영역이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있을 때, 비로소 담장 너머 이웃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넬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울타리는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지지대인 셈이다.


울타리를 치는 일은 처음엔 미안하고 어색할지 모르지만,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정원을 책임질 사람은 세상에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