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효율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안식처’를 갖는 일
얼마 전, 책상 위를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비즈 알들을 보며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중고등학교 때 유행했던 비즈팔찌를 만들며 낚싯줄에 코딱지만 한 구슬을 꿰고 있는 모습이라니. 남들이 보면 "그거 해서 어디에 쓰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좁디좁은 비즈 구멍에 집중해 구슬을 밀어 넣는 동안,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떠돌던 걱정과 불안들은 그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수수 튕겨 나갔고, 팔찌 하나를 완성하고나면 그걸 이리저리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든든한 나무들이 정원의 뼈대를 이루고 심어둔 씨앗이 움트며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면, 이제는 정원사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부려볼 차례다. 생산성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꽃들을 만끽할 시간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원을 수확물을 내놓아야 하는 ‘경작지’로만 대해왔던 걸지도 모른다. 내다 팔 배추나 먹을 수 있는 토마토를 키워야 하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정원사의 어깨를 짓눌러왔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땅을 채소밭으로만 채운 정원은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아름답지는 않다. 삶에는 오로지 아름다움만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 공간도 필요한 법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용한 일들. 그 일들에 마음을 쏟는 순간, 정원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내게 그 무용한 꽃은 ‘비즈 팔찌’였다. 손끝의 감각에만 몰입하다 보면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비즈 구멍 너머로 사라지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색깔과 질감만이 남는다. 서툰 솜씨로 만든 팔찌가 쌓여가자 뜻밖의 꿈이 고개를 들었다. ‘여름이 오면 플리마켓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 그 마음은 정성껏 가꾼 꽃들을 모아 꽃다발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하려는 마음과 닮아 있었다. 무기력의 그늘에 갇혀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정원 너머의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반짝이는 신호였다.
가장 무용해 보이는 이 일이 어쩌면 내게 가장 빠르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생산성이 있어야만 인정받는 세계에서 상처 입은 자존감은, 내가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즐거움’을 선물할 때 비로소 치유되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의 주인은 수확량을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정원 구석구석 숨겨진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미소 지을 뿐이다.
영혼이 그 무용한 빛깔에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구의 평가도 허락하지 않는 나만의 비밀의 화단에서 즐거움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의 정원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풍성한 향기를 내뿜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