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잠시 머물다 가도 좋을 만큼의 온기를 가꾸며
나의 작은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듯 지금 나의 삶을 되짚어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정체 모를 잡초들이 발목을 잡고, 붉은 이끼와 돌멩이들이 길을 막아선 ‘바쁨’이라는 이름의 울창함으로 채워진 방치된 정원같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정원사인 나는 버거워만하다가 호미를 내던진 채 주저앉아있었다.
에필로그를 쓰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내 삶에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만이 가꿀 수 있는 내 삶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는 정작 단 한 번도 상태가 어떤지 살피지 않았던 날들. 누구와 경쟁하는지도 모른채 열심히 나무만 심으려 애쓰고, 정작 내 정원이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채찍질만 했던 시간들. 나는 나 자신을 가꾸는 정원사가 아니라, 내 삶을 가장 지독하게 학대하는 감시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드닝은 거창한 풍경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의 습도를 읽어주고 올라온 잡초 하나를 묵묵히 뽑아주는 '돌봄'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무언가를 정성껏 돌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기쁘고 다정한 일이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이불을 개고, 무용한 비즈를 꿰는 사소한 행위들이 모여 내 정원의 흙을 다시 숨 쉬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지키는 법도 배웠다. 타인의 무례한 발자국을 막아설 단단한 울타리를 세웠고, 생산성이라는 이름의 배추밭 대신 나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꽃밭도 마련했다. 예전에는 정원 문을 꼭 걸어 잠가야만 안전하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울타리 안이 단단해지니 오히려 담장 너머의 이웃에게 먼저 손을 흔들 여유가 생겼다.
나의 라이프 가드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전히 예기치 못한 비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어느 날엔 다시 이름 모를 이끼가 내 휴대폰 화면을 덮쳐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겁내지 않는다. 내게는 내 땅을 지탱할 루틴의 나무가 있고, 무엇보다 내 삶을 끝까지 책임질 나라는 정원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꾸는 이 정원이 누군가에게 대단한 이야기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어쩌다 내 정원을 찾아온 누군가가 잠시 머물다 갈 때 "참 편안하네요"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랄뿐이다. 주인이 제 땅을 지극히 사랑하고 돌본 흔적이 가득한 곳,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는 그런 정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