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과습을 주의하세요

무기력이라는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 ‘5분의 루틴’

by 하루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도입부에서 여주인공 엘라이자는 알람 소리에 맞춰 안대를 벗고, 도시락으로 계란을 삶고, 정해진 자리에 있는 열쇠를 들고 집을 나선다. 허둥지둥함 없이 물 흐르듯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 일상을 보며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 안정감의 정체는 루틴이 있는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단단한 평화였다.


잡초와 돌멩이를 정리한 내 마음의 정원에 이제 막 ‘감각의 꽃씨’가 심겼다면, 그 새싹들이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줄 나무 한 그루가 필요하다. 가드닝에서 나무는 계절의 풍파를 견디며 정원의 골격을 만든다. 우리 삶에서 이 나무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루틴이다.


내가 키우던 무늬몬스테라에게 생겼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잘자라던 녀석의 입 끝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헐레벌떡 인터넷을 뒤지다가 화원에 데려가서야 알게된 원인은 '과습으로 인한 뿌리무름'이었다. 가드닝을 할 때, 정원사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바로 ‘과습'이다. 의욕이 앞서 너무 많은 물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다. "내일부터 매일 두 시간씩 운동할거야!" 같은 거창한 목표는 준비되지 않은 땅에 갑작스러운 물세례를 끼얹는 격이다. 땅은 물을 흡수하지 못해 늪이 되고, 뿌리는 썩어버린다. 결국 진흙탕이 된 정원을 보며 정원사는 호미를 내던지게 된다. 나 역시 예전에는 의욕만으로 정원을 물바다로 만들었다가 포기하길 반복하곤 했다. 고백하자면 '넌 왜 한눈에 봐도 하루안에 못할만큼 체크리스트를 적어두고, 못 지켜서 괴로워해? 라는 짝꿍의 쓴소리는 내 정원단골메뉴였다.


루틴의 나무는 물의 양이 아니라 ‘지속’으로 자란다. 비가 쏟아붓는 날에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아침에도 기어이 해낼 수 있을 만큼 사소해야 비로소 땅 밑으로 뿌리를 뻗는 루틴으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도 해냈다’ 라는 작은 성취감이 매일 차곡차곡 쌓여 척박했던 토양을 다지고, 정원사에게 '자기 통제감'이라는 귀한 비료를 제공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는 지루한 반복을 ‘자기 최면’이라 불렀다. 나 역시 하루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글을 쓸 기분이 나든 아니든 상관없이 글을 쓰듯, 정해진 시간에 이불을 정리하고 운동화 끈을 고쳐묶었다.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것은 무기력이라는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가장 튼튼한 생존의 밧줄이었다.


커다란 나무는 밤사이에 갑자기 자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흙 밑에서 매일 아주 조금씩 뿌리를 뻗어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을만큼 견고해질 뿐이다. 오늘 실천한 5분이 당장 삶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내면 깊은 곳에는 이미 단단한 지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건 계절의 몫이지만, 땅이 마르지 않게 매일 물뿌리개를 드는 건 오롯이 정원사인 나의 몫이다. 조바심을 버리고 같은 시간에 물을 주는 이 마음이, 결국 나라는 정원을 다시 숨 쉬게 만들었음을 비로소 마주한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