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시작되는 발아
얼마 전 내 책상 한구석에는 뾰족한 잎 끝이 검게 말라가던 다육이 화분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다육이의 그 강인한 생명력조차 주인의 무기력이 옮아버린걸까 싶어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차 싶은 마음에 작은 화분에 물을 듬뿍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쭈글쭈글하게 말라붙어 있던 다육이 잎이 하룻밤 사이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놀라울만큼 키가 쑥 자라 있었던 것이다. 그저 물 한 컵이었을 뿐인데, 이 작은 녀석은 이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성장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절실한 한 모금'일지도 모르겠다고.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막막했던 무렵, 다육이에게 물을 붓듯 내 하루에도 아주 작고 단단한 ‘성취의 감각’을 심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실패 불가능한 파종(성취) 리스트’. 기상 직후 물 한 잔 마시기, 흐트러진 이부자리 정리하기처럼 너무 사소해서 실패조차 민망한 일들이었다.
처음 물 한 잔을 마셨던 아침, 빈속을 타고 내려가는 물의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속으로 '오케이, 하나 해냈다!‘고 소리없이 외쳤다. 단순히 수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잠든 내 몸을 깨워 오늘을 살아내겠다는 의지이자 신호였다. 뒤이어 구겨진 이불도 팽팽하게 펴서 정리했다. 어지러운 자리를 내 손으로 직접 정리했다는 그 사소한 뿌듯함이, 묘하게도 꺾여있던 마음의 깃을 조금씩 세워주었다. 10분을 걷는 동안 운동화 밑창에 닿는 지면의 단단한 감촉은 내가 비로소 무기력의 늪을 벗어나 실제하는 땅 위에 발붙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내게 필요한 성취란 거창한 열매를 맺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무뎌졌던 내 몸의 감각들을 다시 하나씩 ‘내 편’으로 만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씨앗을 심는다는 건 당장 꽃이 피지 않아도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투표하는 일이듯이.
흙 속에 묻힌 씨앗은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안에서는 껍질을 찢는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육이가 하루 밤새 흙 밑에서 필사적으로 물을 빨아올려 한껏 성장한것처럼 말이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운동화 끈을 묶는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내 마음의 온도는 발아에 필요한 적정 온도에 다가가고 있었다. 과연 이 작은 씨앗들이 어떤 숲을 이룰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매일 아침 아주 작은 '성취' 몇 알을 내 하루라는 정원에 조심스레 심어 나갔다. 쑥 자라난 다육이처럼, 내 안의 씨앗도 어느날 아침 싹이 힘차게 움트길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