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을 막고 선 '결정의 돌멩이' 치우기
어느 날 저녁이었다. 다 떨어진 샴푸 하나를 사려고 쇼핑 앱을 켰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천 원이라도 더 싼 곳은 없나', '후기가 왜 이리 극과 극이지?' 하며 무한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어느새 띄워놓은 창만 열 개가 넘었다. 아직 주문해야 할 생필품이 너덧개는 더 남았는데, 고작 샴푸 하나 고르는 데 영혼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 그날 밤 나는 샴푸는커녕 씻을 기운조차 잃어버린 채 이불 위로 쓰러졌다.
방치된 정원을 걷다 보면 발에 치이는 건 잡초만이 아니다. 흙 속에 반쯤 박혀 걷는 내내 신경을 거스르고 발목을 피로하게 만드는 무수한 돌멩이들. 큰 바위라면 차라리 비켜 가겠는데, 이 자잘한 것들은 무시하자니 불편하고 치우자니 끝이 없다. 마치 내 하루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처럼 말이다.
무기력이 극에 달했을 때, 나를 가장 지치게 한 건 의외로 인생의 거창한 고민이 아니었다. 다 떨어진 치약을 고르고, 여행지 숙소 후기를 며칠 밤낮 비교하는 일들. 누군가는 꼼꼼함이라 부르겠지만, 내게 그것은 매 순간 소중한 판단력을 지불해야 하는 고단한 강제 노동이었다. 우리 뇌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의지력은 배터리처럼 정해져 있다는데, 아침부터 옷 고르고 메뉴 고르느라 그 자잘한 돌멩이들을 만지작거리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호미를 들 힘조차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정원의 길목을 다시 살피기로 했다. 일단 내 발목을 잡던 자잘한 선택지들부터 하나씩 뽑아 던지기 시작했다. 우선 생필품처럼 늘 쓰던 것들은 5분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더 싼 게 없을까?"“더 좋은 게 나오지 않았을까?”하며 최저가와 비교상품을 검색하던 집착을 내려놓자, 통장의 몇 천 원보다 더 값진 심리적 여백이 찾아왔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도 나는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오늘은 네가 결정해 줘. 난 고르는 게 좀 지쳤거든." 내어준 것은 선택권이었지만, 내가 돌려받은 것은 그와 함께 하는 풍경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자유였다.
돌멩이를 치운 자리는 생각보다 고요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살지 고민하던 소란이 잦아들자 그제야 내가 진짜 심고 싶었던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늘 만난 사람에게 어떤 진심을 전할지, 내 정원을 어떤 빛깔들로 채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정원 가꾸기는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불필요한 선택들을 부지런히 치워내는 일에 더 가까웠다. 길 위가 말끔해진 덕분에 나는 이제 더 이상 발밑만 살피며 걷지 않는다. 대신 가끔 멈춰 서서, 예전보다 훨씬 선명해진 정원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