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위에 핀 징그러운 '붉은 이끼'

200개의 알림을 지우고 되찾은 정원의 고요

by 하루


누군가 옆에서 내 휴대폰을 보면

깜짝 놀라 묻곤 한다.


'힉! 카톡 알람이 200?? 저 숫자들 다 뭐야??'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고 무심히 지나쳤던 어느 날, 문득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소름이 돋았다. 앱 아이콘마다 오른쪽 상단에 맺혀 있는 선명하고 빨간 숫자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와 알림들이 마치 정원 바위틈에 징그럽게 피어난 ‘붉은 이끼’처럼 보였다. 이 이끼들은 쉴 새 없이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나를 확인해,

이걸 놓치면 너만 뒤처질지도 몰라'


나는 제일 먼저 카톡 채널과 단톡방 그리고 네이버의 각종 알람받기와 메일함이라는 이끼부터 걷어내기로 했다. 처음엔 '정보'라는 이름의 편리한 식물인 줄 알고 내 정원에 들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이끼들이 정원 전체를 덮어버려 흙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메시지와 읽지도 않는 뉴스레터가 쌓일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부채감, 보지도 않는 OTT의 신작 알림을 보며 느끼는 조바심. 그 정체는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불안이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가 나를 잠식하며 주입한 가짜 불안이었다.


큰맘 먹고 필수적인 연락 앱을 제외한 모든 앱의 ‘알림 배지’를 꺼버렸다. 화면에서 빨간 숫자들이 사라지자마자, 기이할 정도로 정원에 고요가 찾아왔다. 사실 세상에서 나만 낙오될 것 같아 무서웠는데, 웬걸. 며칠이 지나도 내가 놓쳐서 큰일 난 정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한 뒤에야 비로소 내 정원의 진짜 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읽지 않고 쌓아두는 메일함과 채널들을 과감히 잘라낸 자리에는 ‘여백’이라는 이름의 가장 귀한 비료가 남았고, 붉은 이끼가 사라진 화면, 정보의 소음이 멈춘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흙의 숨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가장 끈질긴 이끼는 목적 없이 SNS 숏폼 콘텐츠를 스크롤하는 행위였다.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넘기다 보면, 자욱한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안갯속에서 나는 내 정원의 소박한 풍경은 잊은 채, 타인의 화려한 정원만을 쫓아 헤매다 허무함만 껴안고 잠들곤 했다. 마치 대단하고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양 나를 구독하고 저장하라고 외치는 컨텐츠들은 대부분 당연하게도 정작 내 정원을 가꾸는 데 필요한 양분은 단 한 톨도 주지 않았다.


잡초를 뽑는 일은 고되지만, 뽑아낸 자리에 햇볕이 드는 것을 보는 일은 정원사가 누리는 첫 번째 치유다. 나는 이제 가짜 빛을 뿜어내는 액정 너머의 세상보다, 내 손톱 밑에 낀 검은 흙줄기가 나를 더 단단하게 살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