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더라. 회사를 다니며 루틴한 생활을 하던 때이니 7-8년도 더 된 것 같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던 중, 같은 반 동기(?)가 소개팅을 제안해 왔다. 아침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역 내 카페에서 간단히 커피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일터로 향하곤 했는데, 그때 나를 좋게 본 모양이었다. 마침 솔로였던 나는 흔쾌히 예스를 했고, 그 분과의 만남이 빠르게 성사됐다.
멀끔한 남자분이 나왔고 함께 스페인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흘러간 대화의 주제는 소개팅 단골메뉴인 '취향'.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기에 망설임 없이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다프트 펑크' 그리고 '카를라 브루니'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당시 내가 가장 즐겨 듣고 좋아하던 가수였기에 각자의 취향을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묘하게 날이 서있었다.
‘아,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호불호가 되게 확고하신 것 같아요.‘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대중적인 뮤지션을 이야기했어야 했던 걸까. '그런 편이라고' 순수하게 긍정하며 답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말의 의미에는 '참 유별날 것 같다'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는, '그래서 너와 나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섞여 있었음을 깨달았다. 조금 극단적으로는 어딘가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찍힌 듯한 기분도 들었다.
뭔가 굉장히 억울했다. 취향이 확고하단 이유로 죄송해야 할 것 만 같은 기분이었으니. 난 그저 어디선가 처음 접하고, 혹은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서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었을 뿐이고, 그게 한국 가수나 아주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었을 뿐이다. 사실 취향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을 뿐이고, 서로 추구하는 이성상이 달랐을 뿐일 테지만, 기분은 참 묘했다.
이전부터 친척 언니 오빠들로부터 '너는 참 독특하다', '너는 너만의 색이 확실한 것 같다'라는 말을 들어왔고, 나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 말이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의미의 '칭찬'과 '비난'사이 그 어딘가쯤에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좋아하는 게 많고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면 신이 나고 함께 공유하면 더 신이 나 몇 시간이고 떠드는 그런 사람이다. 나와 취향이 다를지라도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보면, 그 좋아하는 마음이 참 귀여워 보인달까.
내게 취향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잘난 척’의 근거도 세련됨을 증명하는 ‘계급’의 상징도 아닌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결’을 엿볼 수 있는 힌트 정도이다. 시간이 더욱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소개팅남도 날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했다기보다 서로의 ‘결’이 맞지 않았음을 직감했던 걸까 싶다.
그래, 내가 좀 독특한가보다. 그런 생각으로 내 취향의 정원을 묵묵히 가꾸어 오던 어느 날, 한 사람을 만났다. 나의 확고함이 좋고, 그 선명한 결을 닮고 싶다 말해주는 사람. 좋아함을 변명할 필요가 없고, 취향으로 서로를 재단하지 않아도 되는 평생의 친구.
우리는 물 흐르듯 흐르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세계를 넓혀간다. 내 안의 결을 발견해주고, 그 투박함조차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읽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따뜻하고도 행복한 일임을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