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보다 깊고 선망보다 뜨거운

정답지를 훔치고싶은 '롤모델'보다, 주파수가 같은 '닮고싶은 사람'

by 하루




세상에 예쁘고 멋진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닮고 싶은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묻는 '롤모델'과는 결이 다르다. 롤모델이 내 인생의 ‘정답지’를 훔쳐보고 싶은 야망에 가깝다면, 닮고 싶은 사람은 내 인생에 흐르는 ‘배경음악’을 그 사람과 같게 만들고 싶은 갈망에 가깝다. 롤모델은 그가 이뤄낸 성취와 사회적 위치라는 이정표를 따라오라 손짓하지만, 닮고 싶은 사람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특유의 주파수로 나를 매료시킨다.


전자가 ‘어디에 도달할 것인가’라는 결과의 문제라면, 후자는 ‘어떤 온도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태도의 문제다. 그래서 보통 롤모델은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지만, 닮고 싶은 사람은 비슷한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설령 그가 삶의 어느 지점에서 비틀거리거나 실수할지라도, 그 비틀거림마저 자신의 색깔로 소화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실수마저 감싸주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다.


내게도 실제로 만난 적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럼 사람이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100인'중 1위로 뽑힌 적도 있는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녀를 좋아하고 선망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일반적인 동경보다 조금 더 깊고, 선망보다는 조금 더 뜨겁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그녀가 이룬 화려한 필모그래피보다, 스크린 밖에서도 여전히 현실을 응시하는 그 눈빛의 농도가 나를 더 지독하게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접한 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였다. 구불구불한 웨이브 머리와 이마에는 헤어밴드를 두르고, 플래퍼룩을 완벽하게 소화하던 아드리아나. 영화 속 그녀는 주인공의 뮤즈였지만, 나의 짝사랑은 영화가 끝난 후 환상이 걷힌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녀의 궤적을 쫓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정주행 했다. '라비앙 로즈'의 압도적 투혼과 '미드나잇 인 파리'의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신비감, '어느 멋진 순간'의 '햇살처럼 싱그러운 생명력, 그리고 '내일을 위한 시간'의 지독하게 정직한 민낯과 처절함까지. 나는 왜 이 배우에게 이토록 매료되는 걸까.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기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찾는 과정이다." 그녀는 산드라(내일을 위한 시간)가 되어 고단한 현실을 걸어갈 때,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신과 가깝다고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를 매료시킨 건 아드리아나의 매혹적인 신비감이었지만, 나를 오래도록 붙잡은 건 산드라의 처절한 민낯이었다. 수십억의 모델료를 받는 브랜드 뮤즈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동료들에게 복직을 구걸하는 지친 얼굴을 연기할 때, 그녀의 지독한 진심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미소 짓기 위해 주름을 지우지 않았고, 만들어진 존재하기 위해 취향을 숨기지 않았다. 인위적인 시술로 주름을 없애는 트렌드에 대해 그녀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나는 내 얼굴에 새겨진 선들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내가 웃고, 울고, 살아온 삶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얼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언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 '삶의 지도'를 지키려는 고집은 스크린 밖에서도 이어진다. 레드카펫 위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환경 시위대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스스로 철창에 갇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 때로는 그녀의 행동이 비아냥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변명 대신 이렇게 응수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겁한 일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보다 나다운 자유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 이토록 몇 년을 그녀를 쫓게 만든 근원이 여기에 있었다.


내가 좇는(좋아하는) 모습은 결국 하나의 결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지 않고 나로 살겠다는 고집이었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매혹적인 얼굴을 닮지는 못할지라도, 그녀의 짙은 미소처럼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온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반듯한 정답지보다는, 누군가의 귓가에 오래도록 머무는 근사한 배경음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영화 한 편을 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