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15년 전 작은 뒤통수로 나를 꼬여낸 한 비글 녀석 '하루'와 그 녀석이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악마견 3 대장이라는 비글, 코카, 슈나우저 중의 하나인 비글. 그런데 사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이 아이들은 유독 활동량이 많고 사랑도 많은 녀석들인데, 그 활동량이 채워지지 못해서 때때로 말썽쟁이가 되기도 한다. 그 이유로 인간의 입장에서 악마견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그야말로 '천사견'들이라는 점.
2011년 8월 11일. 이제는 제법 나이가 지긋한 비글 ‘하루’가 내 인생에 들어온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나와 언니의 단호하고도 결연한 마음, 그리고 처음 마주한 그 작은 뒤통수까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사람 같은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기에 품에 안아보고 내려주었더니, 마치 내려놔서 삐졌다는 듯이 뒤통수만 보여주던 그 녀석. 어찌나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지 그 서운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그 녀석의 고집 센 뒤통수에 단단히 멱살 잡혀 버렸다. 2025년 현재 비글 하루는 15살. 사람으로 치면 무려 84 살인셈이다.
'하루'가 내 삶에 들어오기 전 내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크지 않은 방에서 함께 자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풍족하진 않아도, 웃음이 넘치고,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집, 딱 우리 집이 그랬다. 그리고 그 가족의 중심엔 언제나 '아빠'가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우리 집은 산 아래 나란히 선 세집 중 하나였다. 현관문을 열면 앵두나무가 보이고 여름이면 마당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하지만 공포스럽게도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세 집이 함께 쓰는 ‘화장실 청소’처럼, 남들이 하기 싫어하던 것도 늘 나서서 하던 아빠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나중에야 자세히 안거지만, 아빠는 친구의 사기부터 사업 위기까지 온갖 풍파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늘 검소했고, 그런 아빠에게 막내딸인 내가 언젠가 꼭 해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작은 뜰이 있는 집을 사서 아빠가 가꿀 정원을 만들어주는 것’뭔가를 만들고 가꾸는 재주가 뛰어난 아빠가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우리와 수다를 떠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애석하게도 그 상상은 이루지 못한 꿈으로만 남아 버렸다(쓴웃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이 많은 딸이었다. 대학 시절, 여유 없는 형편에 해외 교환학생이 가고 싶었다. 딸이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환학생에 지원해 합격했다고 기쁘게 말했었지만, 아빠가 조심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에 가면 안 되겠니?'
나는 고집스럽게 다음엔 또 안 뽑히면 언제 갈 수 있냐며 우울해했다. 그렇게 결국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었다.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물론 알지 못했다. 독일 생활은 그저 즐거웠고, 여름방학이 되자 언니가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내게 와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주변국을 여행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가 위급하단다. 담배를 많이 태우긴 했지만 아무런 병증도 없이 건강하던 아빠가 갑자기 위독하다니. 기억도 잘 안 날 정도로 서둘러 언니와 공항을 향했고, 울며불며 제일 빠른 티켓을 달라며 직항인지 편도인지도 모르는 티켓을 끊어 한국으로 왔다. 비행기 편은 중간에 하필 기체결함으로 몇 시간은 공항에서 멍한 정신으로 대기를 해야 했다. 아빠는 눈을 감은 채 나와 언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은 났지만, 그때까지도 이제 아빠의 따뜻한 손을 만질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슬픔보다 '현실부정'의 감정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사인은 원인도 불명확한 흡인성 폐렴. 의사도 원인을 모른단다. 그날 장례식장은 너무도 허망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주변 친척들에 의해 장례식은 흘러갔다. 아빠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건지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장례식 이후 병원을 찾았다가 간호사들에게 의료사고를 캐내려는 진상 취급을 받기도 했다. 아빠가 떠난 뒤 온갖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우리를 덮쳤고, 처참해진 정신으로 우리 가족은 무너지려 했다. 우리는 셋이 똘똘 뭉쳐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다시 독일에서 남은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맘 때쯤이다. 하루가 우리 가족에게 온 날이.
하루는 고집 센 뒤통수마저 사랑스러운 아이로, 늘 자기 방식대로 움직였다. 이 쪼그만 녀석이 뭔 힘이 이리 좋은지 지 몸만 한 껌을 주면 집요하게도 밤새 멈추지 않고 씹어 전부 먹어버리곤 했다. 우리의 만만찮을 미래를 엿보였다. ‘이놈, 보통이 아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더 작은 집으로 옮겼고 하루는 답답한 건지 개춘기가 온 건지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날들을 떠올리면 매일매일이 정말 곤욕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일을 마치고 집에 와 문을 열면 코를 찌르는 악취와 널브러진 쓰레기가 나를 반겼다. 쓰레기봉투를 끄집어내 전부 헤집고 온방에 보란 듯이 펼쳐놓는 녀석. 그때마다 쓰레기 중에 닭뼈나 방부제 같은 것들이 있었을까 봐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는지 모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 방의 쓰레기를 치우고 방을 닦고 냄새를 빼고 나서 하루를 보면, 잘못한 기색은 찾을 수 없이 해맑다.
되려, '응? 힘들어? 어딜! 정신 차려야지?(웃음)'라고 말하듯 금세 치울 거리를 만들어 정신을 쏙빼놓곤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반응속도가 느려 하루의 주요 타겟이되었다. 엄마가 잠깐 문을 열고 쓰레기를 내놓는 사이, 하루는 문밖으로 뛰쳐나가 집 앞 골목에서 몇 시간을 버티기도 했다. 새벽 내내 들어가자고 간식으로 회유를 하고, 화도 내보고, 온갖 애원을 다해도 원하는 시간을 채워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날들. 다시 떠올려도 등골에 땀이 맺히는 기분이다.
명절은 하루에게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날이었다. 아빠의 제사상을 차려두면 고기 한 덩이를 후딱 물고 가 냉큼 먹어버리던 녀석, 다 먹어치우고는 끝끝내 제사상 밑에서 나오지 않아 우리는 하루에게도 절을 해야 했다.
그뿐인가. 선물 받은 호두과자 상자를 어떻게 꺼냈는지 김치냉장고 위에서 끄집어내 알갱이만 먹고는 포장껍질만 한 곳에 고이 쌓아놨던 녀석, 뜯지도 않은 쌀봉투를 물어뜯어 보란 듯이 생쌀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고는 산책 중 폭풍설사를 하던 녀석, 김치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물고 가 얼굴과 손발에 며칠 동안 호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빨간 칠을 하고 있던 녀석... 전부 한 녀석의 이야기가 맞다. 그때는 밉고 야속하기만 했던 날들이 지금 생각하면 그립고 고맙기만 하다. 하루와 시간을 보내고 웃고 떠들다보면 힘든 생각은 할 틈도 없었다.
이후 지금의 작고 오래된 내 집을 마련하기까지, 우리는 두 번 더 이사를 했다. 세 모녀가 갑자기 닥쳐온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동안, 하루는 그 힘든 과정을 또 다른 힘듦(?)으로 잊게 해주는 우리 가족의 비타민이자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원래 정신적 힘듦은 육체노동으로 잊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하
하루에 대한 기억들은 온통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뿐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남겨준 네가 지금은 고맙기만 하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다. 그 사이 '하루'는 내게서 우선순위가 되기도 뒷전이 되기도 했다.
하루는 어느덧 15살이 되었고, 먹보의 식욕이 사라지기도 하는 이상한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