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간병일기 - 01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어느 날 밤, 하루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방 안을 느릿하게 서성이며, 평소와는 다른 낯선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깨달았다. 요즘 하루는 더 이상 예전처럼 씨익 웃지도 않고, 특유의 우렁찬 울음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잠 못 이루는 하루 곁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얇아진 다리와 등을 조심스럽게 주물러주며, 괜찮다고, 곁에 있다고, 계속 속삭였다. 그러다 새벽 5시가 되었고, 하루가 침대에 몸을 뉘이고는 익숙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드르렁드르렁. 그 소리가 그렇게 고마울 줄이야. 듣기 좋은 편안한 음악처럼, 마음을 녹여주는 진동이었다. 그제야 우리도 조심스럽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장면들 덕분에 아침 8시까지 단 한숨도 깊게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지만 그림처럼 떠오르는 장면들은 해마다의 어느 봄날이었다.
벚꽃 흩날리던 어느 봄날, 하루와 나란히 산책하던 길.
“하루야, 행복해?”
하고 물으면 꼬리를 파닥이며 환하게 웃어주곤 했다. 그 미소가 번뜩 떠오르더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은 오래 걷는 것도 힘들어졌고, 가끔은 다리에 힘이 풀려 멈춰 서 있는 날도 있지만, 괜찮다. 하루가 걸을 수 있는 날까진 천천히 함께 걷고, 그 이후엔 유모차에 편히 앉아서라도 함께 햇살을 즐기면 된다. 그저, 조금만 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기를 바랐다. 강아지의 하루는 우리의 일주일이라고 했던가. 하루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니까, 지금만큼은 하루의 시간이 조금만 더디게 흘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불행히도 시간이 나를 특별히 봐줄 리 없었지만, 다행인 건 봄이 오고 있다는 거였다. 곧 다가올 따뜻한 계절, 꽃 피는 봄날에 햇살 아래서 또 한 번 꼬리를 흔들며 입가에 주름이 질만큼 웃는 하루가 보고 싶었다.
하루의 최근증상은 이랬다. 약 한 달 전부터, 점점 사료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간식은 잘 먹으니 그냥 나이 들면서 편식이 심해졌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틀 전부터는 좋아하던 고기도, 가장 좋아하는 간식까지도 손사래를 치듯 외면했다. 문득 며칠 전, 동물병원에 문의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15살이요?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이 훌쩍 넘은 거예요."
병원에서는 그렇게 말하며, 이 정도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했다. 강아지 평균 수명이 대개 15년 내외로, 중형견은 12-15년이다. 그러니 언젠가 하루가 나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거라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인지, 하루만큼은 예외일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저 내 마음 편하기 위해 그렇기 믿어버렸다. 며칠 전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에도 ”이렇게 건강한 15살은 처음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나의 이런 믿음을 굳건히 하는데 한몫했다. 아직 아무런 진단도 받지 않았는데 왜 이리도 불안감이 밀려오는지 애써 봄날의 산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꾹꾹 눌러댔다. 그리고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이 지금은 아니길 바랐다. '잠깐 이러는 걸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적인 생각과 '우리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오고 있다'는 불안함이 마구 뒤엉켜 정말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식욕저하'라는 대수롭지 않은 증상을 가지고 죽음까지 생각하며 스스로 '나 진짜 혼자 또 너무 멀리 간다, 너무 청승맞다'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그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신호인지 이때는 생각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워서 내일 당장 병원을 가볼까 아님 좀 더 지켜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니. 시간이 지난 지금 명확히 알겠는 건, 기본 3대 욕구는 그야말로 삶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거다. 내 강아지 혹은 고양이에게 평소와 다른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 변화가 보호자에게 조금이라도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지금'이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