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간병일기 - 11
하루의 간병을 시작한 지 6개월, 무서울 만큼 빠르게 찾아오는 변화 속에서 내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하루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늘 적어도 일주일은 혼란 속을 헤매야 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래, 하루도 나이가 들었고 자연스러운 거니까. 내가 정신 차리자.' 라며.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내 치마가 젖는 걸 느끼고서야 깨달았다.
소변을 보다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지언정, 꼭 패드를 찾아가는 하루. 아직까지 한 번도 배변실수 없이 꼭 패드를 찾아가 변을 보는 녀석이었다. 몇 걸음 가서 뒷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비틀비틀하면서도 온방을 누볐다. 내 방에 왔다가, 엄마방에 갔다가 골고루 애정을 보여주는 사랑이 넘치는 하루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인가 하루가 누웠던 자리에 자꾸만 조금씩 젖은 자국이 보였다. 처음엔 코를 대고 나면 젖으니 콧물인가 싶었다. '찬바람 조금 쑀다고 감기가 걸린 모양인가? 따뜻하게 해 줘야지' 라며 이불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어느 날은 나들이 가는 길 차 안에서, 내 다리 위에 하루가 편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치마가 뜨끈해지며 축축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이게 뭐지..?' 하루가 소변을 본 건 아닌데, 아무래도 힘이 풀려 저절로 새어 나온 것 같았다. 하루에게 요실금이 온 것이다.
하루도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느낌이었다. 늙어간다는 건, 노견과 산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하고 처음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쯤은 괜찮다. 까짓 거 옷은 갈아입고, 침대는 빨아주고, 몸에 묻으면 더 자주 씻겨주면 되는걸!
그리고 곧 가장 속상했던 두 번째 변화가 찾아왔다.
증상은 시도 때도 없는 다리힘 풀림이었다.
"우리 하루, 어디가 할머니야?
눈빛이 아직도 이렇게 똘망 똘망한데."
한 달 전만 해도 하루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했던 말이다. 산책 나갈 준비만 해도 들떴던 아이가, 산책줄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뒷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서려 애쓰는 모습에 내 심장은 철렁이고, 좌절과 죄책감이 번갈아 찾아왔다. 새벽이면 철퍼덕 넘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고, 그렇게 밤낮이 뒤바뀐 생활이 시작됐다. 몸도 마음도 동시에 무너졌지만,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내가 흔들릴수록 하루의 컨디션도 나빠질 뿐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담담히 받아들이자. 당황하지 말고, 잘 대처하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던 날들은 좋았던 날들이었다. 뒷다리에 아예 힘이 없어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는 내 가슴에도 큰 바위가 들어앉는 기분이었다. 큰 바위를 마음에 안고 하루의 다리가 되어주기 위해 내가 더 열심히도 걸어 다니기로 했다.
뒤이어 찾아온 세 번째 변화는,
배변패드와 휴지를 뜯어먹는 행동이었다.
처음엔 혹시 냄새가 묻었나 싶어 패드를 갈아주었고, 배가 고픈가 싶어 밥을 더 주기도 했다. 씹는 게 필요할까 싶어 껌을 줘보니, 혀끝에 피가 맺힐 정도로 열심히 씹던 하루. 하지만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스트레스인가 싶어 더위를 피해 유모차에 태워 밤산책을 나가봤지만, 이전처럼 산책줄 소리만 들어도 흥분하던 하루는 이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느꼈다. 이건 특정한 원인이 있다기보단, 반복된 행동이 습관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실수로라도 바닥에 물어뜯을만한 게 없도록 최대한 치우기로 했다.
치매의 전조증상이었을까,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뀐
생활과 목적 없는 배회가 시작됐다.
신부전 치료를 위해 수액을 맞기 시작한 후 음수량과 소변량이 늘면서 처음엔 생리적인 이유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는 물을 마시지도, 소변을 보 지도 않으면서 이 방 저 방을 이유 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편한 자리를 찾는 건가 싶어 가는 곳마다 이불을 깔아주었지만, 결국 하루는 자기 침대나 현관 타일 위에 조용히 몸을 눕혔다. 어딘가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인지 기능장애 초기 증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단정할 수 없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주자. 다치지만 않도록, 위험 요소만 치워주자.
마지막 변화는 걱정을 넘어
공포스러웠던 발작과 틱 증상이었다.
처음 발작은 병원 입원 중 한 번뿐이었다. 그 후 수술과 회복을 거치며 한동안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한 달에 한두 번씩 발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최근 들어 눈을 갑자기 깜빡이거나, 입을 딱딱거리거나, 고개를 툭 떨구는 틱 증상도 자주 보였다. 병원 검사상 전반적으로 수치가 안 좋아졌지만 발작의 원인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가장 확률이 높은 원인은 신부전의 악화나 뇌병변이었다.
신경 증상을 막기 위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빠른 항경련제를 먹이며 관리해 보기로 했다. 먹으면 잠이 더 늘고 더 무기력해질 수 있어 최대한 늦추고 싶었지만, 검진일 또다시 발생한 발작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약은 발작을 잠재웠지만 하루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수개월에 걸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때마가 약을 주고 증상을 막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 변화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을 뒤흔들 때도 많다. 하지만 하나는 점점 더 확실해졌다. 노견을 돌보는 데엔 지나친 감정이입보다, 단단한 심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노견과 함께 한다는 건 지난 시간을 부여잡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거라는 걸.
손바닥만 하던 아가가, 이제는 내 품 안에서 천천히 할머니가 되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울기보단,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고, 하루가 덜 힘들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게 내가 하루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자, 보호자의 책임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갔다.
하루가 오늘 아픈데 없이 편안했길, 내가 곁에 있단 사실에 안심했길, 더 욕심내자면 행복한 순간이 있었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