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

노견 간병일기 - 12

by 하루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또 새로운 증세가 생기고를 반복했다. 비장적출수술이라는 고비를 잘 견뎌낸 후 세포염색검사에서 공격성이 약한 세포라는 결과를 얻고 약간은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 싶은 참이었다. 신부전증은 최근 수치가 좋아지기도 했기 때문에 잘 관리만 해주면 된다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고, 늘 지금 같을 것만 같았던 소중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7개월이 될 무렵, 뒷다리에 점점 힘을 잃어갔고, 나중엔 앞다리까지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딱 한 번이었던 발작이 두 번이 되었고, 누워만 있는 시간이 늘며 점점 고개를 떨구어 갔다. 누워서 대소변을 하는 게 일상이 되고 짖음도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주사기로 강급을 하면 꿀꺽꿀꺽 받아먹고 삼키는 하루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느꼈고, 그 덕분에 나는 희망을 가졌다.


'지금은 상태가 안 좋지만

내가 밥도, 약도 잘 먹이고

수액도 열심히 놔주면 조금씩 기운을 찾을 거야.

하루도 이렇게 힘 내주고 있잖아’


라며. 그렇게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약을 먹였다. 숨을 거두기 전 이틀은 정말로 누워만 있었다. 철분주사 알레르기로 결막이 부어올라 병원에도 갔었고 축 늘어진 하루의 몸상태를 보며, 발작약을 줄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상담했다. 이틀 동안 내내 하루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심장 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했더니 빈혈때문에도 잡음이 섞일 수 있고, 귀로 듣는 건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 사람 귀는 부정확하니까'


불안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물어보면서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듣고 싶은 것만 긍정적으로 기억하려고 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아이이니 스테로이드 주사하나도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결막이 부어올라 괴로워하니까 어쩔 수 없다며 주사를 받아들였고, 발작약 때문에 축 늘어져 있어도 또다시 발작이 오면 더 손상이 크다는 사실에 약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무력할 대로 무력해졌다. 가슴은 계속 계속 무너져 내렸고 컴컴한 동굴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없이 누운 상태로 온종일 눈만 열심히 나를 보던 하루를 너무너무 안아주고 싶었다.


'하루.. 안아줄래'


라며 하루를 품에 안았고, 품에 꼭 안겨있던 하루에게서 ’억’ 하는 느낌에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발작이 오나 싶어 급하게 침대에 뉘었지만 평소와 달랐다. 금세 핏기가 사라졌고 소변을 했다. 심장소리를 들어봤지만 들리지 않았다. 당장 병원에 안고 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무리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정말로 심폐소생술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자 다 모르겠고, 숨만이라도 붙이고 싶었다. 내 품에서 느낀 ‘억’ 하는 느낌은 하루의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이었다.


그날이 입추였다. 하루가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쉰 날이. 더운 여름 집에만 있느라 답답할 하루를 보며 가을만 같이 나면 좋겠다.. 라며 바랐고 하루에게도 곧 가을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속삭이곤 했다. 하루는 착하게도 입추를 기다렸나다보다. 언니 속상하지 말라며 내가 품에 안아주기를 기다렸나 보다. 내 얼굴이 침범벅이 될 정도로 뽀뽀를 좋아하던 하루는 아픈 후로 뽀뽀를 잘해주지 않았다. 그날은 하루 앞에 누워 코에 뽀뽀를 무한으로 해주며 언니한테도 뽀뽀를 해달라고 했다. 하루는 조용히 뽀뽀를 받아주다가 힘겹게 혀를 핥짝 하고 응답을 해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뽀뽀였다.


지금 내 옆에는 하루의 빈 침대에 작은 상자만이 놓여있다. 하루는 내게 '한번 더'의 기회를 주고 갔다. 일에 정신 팔려 힘든 날엔 산책 내일 하자 라며 미루던 내게 기회를 더 주려했는지 그 힘든 비장적출 수술을 견뎌내고 이겨냈다. 하루가 떠날 수도 있다는 걸 느낀 후에야 이제 너에게 남은 시간은 전부 너를 무조건 1순위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게 집중했다. 하루가 회복한 후에는 매일매일 하루를 데리고 산책을 갔고, 하루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에는 종일 집에서 같이 있었다. 하루가 아픈 후 8개월을 온통 하루와 보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하루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매일매일 귀에 속삭여줬다.


하루야, 언니한테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언닌 하루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

하루는 행복했을까?

언니가 산책 더 많이 못해줘서 미안해.

가을 되면 우리 또 여기저기 놀러 다니자.

혹시 우리 하루 헤어지더라도 또 만나자.

언니가 찾아갈게.

우리 하루 많이 힘들면 너무 버티지 않아도 돼.

하루야 편히 자. 잘 자고 일어나.


그 이야기들을 다 들었을까. 수많은 후회의 날들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저 하루의 추억과 고요한 흔적과 적막함만이 남았다.


찹찹찹찹.

발톱을 바닥에 부딪히며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니던 소리.

꼬리꼬리함이 섞인 구수함을 풍기며 새로 빤

베개와 이불에 비비고 다니던 냄새.

일어나면 내 몸 한편에서 느껴지던 온기는 어디 갔을까.


이제는 지나치게 자유로워 불편함에 깨어난다. 몇 달간 집에만 있느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갑갑해하던 나는 어디 가고 어두운 새벽 해도 뜨기 전 눈은 떠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