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간병일기 - 03
아침 일찍 가벼워진 하루를 품에 안고 병원에 도착했다. 입원 전 검사로 심장 초음파를 먼저 진행했다. 다행히 심장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다(의학적으로는 b1 단계). 나이 든 아이들 대부분에게 나타나는 판막 질환이 살짝 보이긴 했지만, 수술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혈액형 검사는 A형 플러스. 이 또한 다행이었다. 만약 마이너스였다면 혈액을 구하느라 또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빈혈 수치와 췌장 수치가 어제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컨디션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액 처치를 한 뒤, 그날 오후 바로 수혈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작용들 때문에 쉽게 생각했던 수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생길 수 있는 첫 번째 부작용은 알레르기 반응이다. 혈액형이 맞아도, 체내에 들어온 다른 피가 자극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황달이 나타날 수도 있고, 피가 깨질 수도 있다고 했다. ‘피가 깨진다’는 말은 곧 적혈구가 파괴된다는 뜻이었다. 그럴 경우에는 상태를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수혈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두 번째 부작용은 폐에 물이 차는 증상. 만약 이 상황이 오면 초음파로 관찰하며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다. 하루에게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너무 적나라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이 모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수혈이 시작됐다.
'너.. 공혈견이라고 들어봤어?'
수혈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언니가 공혈견 이야기를 꺼냈다. 평생 피만 뽑히다가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거다. 유기견의 상황을 잘 알고 봉사도 다녀봤지만, 수혈이 필요한 순간인 지금이 오기까지 공혈견은 생각도 못해봤던 이야기였다. 빨리 피를 구할 생각만 했지, 이 혈액을 공급해 주고 하루를 살려준 고마운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도 안 해봤다는 게 반려인으로서 부끄러웠다. 하루에게 피를 나눠준 아이에게 '고마워', '미안해'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소중한 우리 아이를 살게 하는 저 뒤편엔 피를 나눠주고 있는 역시나 소중한 생명을 가진 또 다른 아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1시간쯤 흘렀을까, 수혈이 끝이 났다.
“하루가 잘 버텨주고 있어요. 수혈은 문제없이 마무리됐습니다.”
다행히도 아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과 세포의 긴장이 다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단 한 문장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 며칠째 맴도는 긴장의 고리 속에서 처음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이 엄청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넘겼다! 다음날 하루의 수혈 경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담당 수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들은 설명은 하나같이 무겁고 아찔했다. 수혈 덕분에 빈혈 수치가 어느 정도 올라가긴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보통 수혈 후 16% 정도 수치 상승을 기대한다는데, 하루는 그에 못 미치는 수치였다. 계속해서 수액을 맞고 있어 콩팥 수치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회복이 더디다는 건, 만성 신부전 4기에서 급성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는 뜻이었다.
급성 신부전으로 진행되면, 언제 어떤 위험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 경우, 유일한 치료는 투석이라는데 투석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투석 후의 예후도 크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말이 이어졌다. 투석은 몸의 피를 모두 빼내어 정화한 뒤 다시 넣는 방식이다. 처음 듣는 치료 과정이었고,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에게 가혹하게 느껴졌다. 지속되는 설사와 점액변, 변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보니 장염이 의심됐다. 염증 수치가 계속 높게 나오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도 하루의 소변량은 3 정도로 수준으로 나쁘지 않다는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암울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질수록, 이상하게도 머리는 차가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하루 면회를 갔다. 처치실 안, 하루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미동도 없던 아이가, 토닥이며 부르자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데리러 온 줄 알았는지, 살며시 고개를 파묻는다. 병원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밥을 주려 해도 예민해진 하루가 입질을 해서 쉽지 않다고. 그래서 내가 직접 손가락에 사료를 묻혀 조금씩 입에 넣어봤다. 처음엔 거부하더니, 이내 살짝 핥기 시작했다. 조금 먹고 난 뒤엔 물도 조금 마셨다. 하지만 넥카라를 한 채로는 물그릇이 너무 불편했는지 힘겨워 보였다.
저녁, 병원에서 온 사진과 메시지. 하루는 여전히 밥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오후 7시, 다시 면회를 가서 손으로 직접 밥을 먹였다. 그나마 투약캔은 맛이 괜찮은지 조금씩 받아주었지만, 정작 장에 좋은 처방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애가 탔다. 그렇게 꾸역꾸역, 간신히 몇 입 먹이고서야 처치실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리 하루 정말 잘하고 있어, 언니 내일 또 올게, 하루야. 조금만 더 힘내자..”
용감하게 말하고 나오는 내 속은 아주 까맣게 타들어갔다. 비장이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장기다. 피를 많이 머금고 있어 터질 수도 있는 장기라고? 하루에게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고 있는 비장이 존재하는 이유에서부터 화가 났다. 없어도 생명애는 지장이 없는 장기라며, 도대체 왜 있어서 하루를 이렇게나 힘들게 하고 있는 건지. 지금도 작은 몸으로 싸우고 버티고 있는 하루 생각에, 나는 괜히 자연의 섭리에 시비를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