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_김태진
잘 닦인 길은 매력적이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확실하고, 걸려 넘어질 돌부리도 없는 길은 따라가기만 해도 멋진 곳에 도달할 것만 같다. 그러니 모두가 그 탄탄대로를 걷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안전한 길, 보장된 길.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 깊게 파인 홈을 걸어가는 것은 한때 나의 목표이기도 했다.
멋있어 보여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 분명히 동경은 아니었다. 내가 그 길을 가고 싶어 했던 건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다들 그곳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나만 다른 곳을 향한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이탈자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잘 닦인 길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의 저자 김태진은 그 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걸어가는 그 길을 벗어나 나다움을 찾아 나가라는 그의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나, 그가 전해주는 말은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이전까지의 산업화 시대의 포맷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변화하는 21세기에 발맞춰 우리의 사고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홈에서 벗어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대지이다. 사실상 그건 황무지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것도 개척되지 않은 그 넓은 곳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저자 김태진은 그것이 바로 나다움을 찾아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나다움을 찾는 것에도 조건은 필요하다. 나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길의 가치를 세상에 납득시킬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길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나만의 길이야말로 21세기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 해답의 열쇠가 현대미술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왜 하필 현대미술일까? 알고 있는 미술가의 이름을 대라고 하면 얼버무리면서 겨우 손가락 열 개를 채울 수 있는 나로서는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뭘 알아야 배울 것 아닌가. 혁신과 창조는 그 단어 자체로도 꼭꼭 숨겨진 덤불 속 보석 같은데, 현대미술에서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니 막막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내 고민을 짐작이라도 한 듯, 현대미술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현대미술의 거장들이야말로, 견고한 틀을 깨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미술이 ‘재현’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영역이었다면 현대 미술가들은 그 틀을 깨부수고 자신들만의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21세기 역시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은 우리들만의 예술이 된다. 또한 창의력이 중요한 역량이 되는 21세기에서 예술 분야는 그 두각을 뚜렷하게 나타낼 것이다.
저자 김태진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전해주는 것과 동시에 세상을 선도하기 위한 첫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서는 미술사의 흐름을 뒤바꾼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발상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나다움을 찾기 위한 상상력을 찾아낸다.
김태진 작가의 [아트인문학]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일 년 전, 우연히 그의 책 [아트인문학 여행 X 스페인]을 읽고도 느꼈던 장점이다. 이 책 역시 현대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하여 작가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20세기 문화예술의 지형은 백남준, 세잔, 마티스 등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움직였다. 그들은 공간을 붕괴하고, 지각을 해체하며, 권위와 형식,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들의 행보에서 저자는 탈공간, 탈지각, 탈권위, 탈형식, 탈물질의 개념을 찾아냈다. 공간과 지각을 벗어나고, 권위와 형식에 제한되지 않으며 재료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들을 통해 미술은 대상을 캔버스에 재현해내는 감각적인 분야에서, 파격적인 창의력들의 장이 되었다.
이 중 나는 특히 초반에 소개된 탈공간과 탈지각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인지라는 것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 이루어진다. 대상을 보는 순간부터 인지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게 박힌 이미지는 강렬하게 머리에 남는다. 부끄럽게도 나의 인지는 그렇게 창의적이지 못한 수준이다. 여태 배워왔던 것들이 강한 틀이 되어 내가 인지하는 모든 것들을 정형화시키는 것만 같다.
반면, 공간을 압축하고 압축해 얇은 캔버스 안에 표현해낸 피카소나,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한 그림을 그린 세잔은 그들만의 세상을 새로 창조해낸 것이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던 세상의 규칙을 깨부순 것이니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원근법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워오던 것이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걸 뒤엎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재창조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걸 사람들에게 납득시켰다. 자칫하면 해괴망측한 이단아로 취급될 수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들만의 창의력을 세상에 납득시킨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며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던 칸딘스키나 키르히너도 마찬가지다. 너무 당연하게 인식되었던 기존의 표현 방식을 뒤엎은 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물론 그들의 도전은 쉽지 않은 것이었고, 대중들로부터 질타와 위협을 받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의 도전은 끝내 미술사에 커다란 획으로 남게 되었다.
틀 밖에서 생각하는 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책 전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도, 작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었던 앤디 워홀도, 변기를 작품으로 만들었던 뒤샹도 전부 틀에 국한되지 않은 생각을 해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겐 실행력과 확신이 있었단 것이었다. 그들은 생각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으로 상상력을 표현해냈으며, 낯선 창의력을 대하는 방어적인 태세의 대중들에게 굴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을 표현해낼 확신이 있었다. 그런 자세가 그들의 ‘나다움’을 찾아내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것을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알려주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스물다섯 개의 생장점을 지나며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은 그들의 웅장한 그림 앞에서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러다가 든 생각은, 왜 그들의 상상력을 따라야 하지? 라는 것이었다.
이 책이 내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현대미술 속에서 일어났던 변화처럼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방법이지 그 예술가들‘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지 나다운 생각은 분명 아닐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걷고 있는 이 길도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창조해낸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눈앞에 넓은 대지를 두고 있고, 그 길을 어떻게 걷든 우리의 결정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잘 닦인 길을 선호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비포장도로로 발을 내디딜 수도 있겠지.
그 모든 길 역시 ‘나다움’에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길을 걸어도,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있고, 자전거로 가는 사람이 있고, 자동차를 타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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