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가는 곳-리베카 긱스
난 고래를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했던 나는 깊은 바다 어디든 자유롭게 누비는 고래를 선망했다. 귀여운 생김새를 하고서 바다의 포식자라 불리는 범고래부터, 영리한 돌고래, 긴 뿔을 가진 외뿔고래, 거대한 흰수염고래까지 고래라면 일단 좋아하고 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고래를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난 혹등고래를 고를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 상단에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서 바다를 유영하는 혹등고래를 직접 보겠다는 것이 몇 년째 자리하고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혹등고래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혹등고래는 내게 단순한 고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쩌다가 혹등고래를 이렇게 좋아하게 됐을까? 그 시작은 분명 혹등고래의 그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혹등고래는 11m에서 최대 16m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하며 무게는 최대 40t까지 나간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게 혹등고래에 빠진 첫 순간이었다. 사람이 타고 있는 배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의 혹등고래는 단순히 멋있다는 말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건 경이로움이었다.
크기뿐 아니라 그의 행동 역시 내게서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어릴 적, 혹등고래가 몸을 뒤집어 바다표범을 가슴지느러미에 태워 범고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영상을 보고 혹등고래의 선행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Killer Whale이라고 불리는 범고래는 상당히 포악한 행동으로 바다 생물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들은 장난으로 새끼 고래를 괴롭히거나 잔인하게 물고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그런 범고래에게서 어린 고래나 사람, 바다표범 등을 지키는 건 다름 아닌 혹등고래다. 범고래가 아무리 포악하다 한들, 16m에 달하는 성체 혹등고래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
그때부터 바다의 수호천사라는 혹등고래를 특히나 좋아했다. 커다란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지느러미를 보면 느껴지는 경이로움은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혹등고래를 실제로 만나보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니 리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을 처음 만나고, 페이지를 넘기는 걸 멈출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저자 리베카 긱스는 지구상 가장 거대한 생물인 고래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논하면서 고대부터 인간과 고래가 함께 해 온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래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고래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고래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다가 해변으로 밀려온 고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고래는 새끼 고래였고 바다를 표류하다가 그만 해변까지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고래는 서서히 죽어갔다. 그걸 발견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그 고래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리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을 시작하는 프롤로그 역시 표류한 혹등고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긱스가 바다로 돌려보내고자 했던 고래는 끝내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끝에도 그 혹등고래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혹등고래가 죽어가는 동안 긱스는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자연의 섭리에 고래의 죽음을 맡기는 것이 좋을지 오지랖을 부려 사망을 앞당기는 것이 고래에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 죽음이 충격적이었던 긱스는 고래가 표류하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게 된다.
긱스가 알아낸 것은 고래의 죽음만큼 충격적이었다. 고래들이 표류하고 해변으로 밀려오고 중력에 의해 자기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는 인간의 책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 때문이었다. 해변으로 밀려온 고래들의 배 속은 각종 완제품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아무렇지 않게 버린 플라스틱 폐기물부터 가전제품, 심지어는 태풍 탓에 바다로 떠내려간 비닐하우스까지 고래의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담겨있었다.
이 폐기물들은 고래의 배 속에서 서서히 그들을 오염시킨다. 고래에게는 저농도 유기인산염을 중화시킬 유전자가 선천적으로 부족하다. 그 상황에서 계속 오염원을 삼키면서 고래는 지용성 독극물을 함께 삼키게 된다. 그 상태로 축적된 독극물과 화합물은 고래의 수명을 함께 하면서 그들을 독극물 증폭기로 만들어버린다. 고래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에는 인간의 쓰레기, 공기 중의 발암 물질과 더불어 다른 어류 속 독극물도 포함된다.
고래의 주식인 단각류의 개체 수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부패한 물고기까지 섭취해야 했던 것이 문제였다. 인간의 폐수 혹은 폐기름 등으로 오염된 물고기들은 고래의 몸속에 독극물을 남긴다. 인간의 폐기물도 마찬가지다. 포유류인 고래는 규칙적으로 산소를 흡입하는데, 이때 공장에서 뿜어낸 카드뮴이나 니켈과 같은 발암 물질을 함께 흡입하게 된다. 발암 물질이 포함된 산소는 수압이 높은 깊은 바다에서 고래의 전신 근육으로 퍼진다. 오염원은 고래의 크기에 비례하여 섭취된다. 그렇게 고래는 서서히 오염되어, 바다의 거대한 오염원이 되는 것이다.
고래의 피부 아래에는 블러버라고 하는 피하지방층이 있다. 고래가 섭취한 오염원들은 블러버에 갇혀 고래가 건강한 상태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고래가 영양 부족 상태인 케토시스 상태에 접어들어 블러버 속 지방을 분해하게 되면, 오염물질은 혈관으로 들어온다. 혹등고래의 경우, 남극해로부터 호주 해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단식 상태에 돌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블러버를 분해해 영양을 섭취하는 순간 오염 물질에 노출된다.
고래를 죽이는 오염물질 중 하나인 폴리염화 바이페닐의 경우는, 이미 산업적으로 퇴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범고래의 몸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오염물질은 50년 이내에 범고래를 멸종시킬 주원인으로 주시 된다. 폴리염화 바이페닐에 노출되지 않았던 북극과 공해 상의 일부 지역의 범고래들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오염물질들은 살아 있는 고래 속애서 쌓여가며 그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새로 태어난 새끼 고래의 몸에도 전해진다. 무서운 점은, 이 폴리염화 바이페닐 생산의 시초는 고래로부터 얻은 기름이었다는 것이다. 즉, 고래기름으로부터 시작된 폴리염화 바이페닐이 고래의 체내에 쌓여 고래를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변화와 완제품 쓰레기와 오염물질의 배출은 전부 인간이 이룩한 인간 사회의 탓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이 바다를 죽이고, 고래를 죽이고, 끝내 오염된 고래를 먹은 인간들에게도 전해진다. 문제는 고래를 먹어 오염되는 인간에 인간의 오염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누이트 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바다는 인간으로 인해 변하고 있고, 고래는 그 변화의 흐름을 전하고 있다.
고래가 바다에서 자연사하게 되면, 고래는 심해로 낙하하게 된다. 인간은 물론이고 고래 역시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떨어지는 과정을 ‘고래 낙하’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고래는 수많은 종의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된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고래는 그곳에서도 옆새우, 대합조개를 비롯한 수많은 종의 생물체들에게 제 몸을 내어준다.
그렇게 고래의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긱스는 이것을 두고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으며, 고래의 죽음은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래가 해변으로 밀려와 죽게 되면, 인간들은 고래 사체를 매립지에 버린다. 고래는 영예로운 고래 낙하로 생을 마감하지 못하고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매립지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긱스는 이쯤에서 독자들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고래의 생에 개입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고래의 경이로움과 그와의 유대를 전부 잊어버린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들의 불행은 결국 고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인간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고래가 가는 곳]에서 긱스는 이 모든 것들의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 다룬다. 긱스는 고래와의 접촉이 인간에게는 불안을 치유하는 경험이 되고, 고래에게는 그저 피해가 된다면 이 접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고래의 관점에서 어떤 규모의 환경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자제시켜야 하는지 제시한다.
고래는 존재만으로 내게 영감이 되는 존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고래를 만나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을 것이고,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래는 여전히 신비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제는 그 경이로운 생명체를 진심으로 이해할 때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담겨 있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담겨 있을 것이다.
레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은 환경을 고래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를 통해 한결 더 무거운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고래를 비롯한 동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긱스는 고래와 인간이 함께 한 역사를 차근차근 반추하며 독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다를, 환경을, 동물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꼭 [고래가 가는 곳]을 읽어보길 바란다.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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