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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Mar 13. 2021

수상한 이웃

 평균 35도의 기온을 웃도는 텍사스의 여름은 한낮에는 습식 사우나에 있는 듯 숨이 턱 막힐 것 같았고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해가 쨍하다가 갑자기 시야를 가려질 정도로 비가 맹렬하게 쏟아졌다.


 6월부터 시작된 여름은 7월에 이르러 기온이 더욱 후끈해지고 정오의 땡볕은  나의 정수리를 벌겋게 달궜다. 7월 어느 토요일 주말, 내가 살고 있던 타운하우스에서 ‘neighbor day’라는 조촐한 행사를 했다. 같이 살고 있는 단지 내의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취지의 가벼운 파티였다.


 거주자의 대부분이 미혼의 학생이거나 아이가 없는 커플들이었다. 그곳에서 콜럼버스와 그의 동거녀인 캐시를 만났다.  콜럼버스는 유머러스하고 체격이 좋은 흑인 남자였고 그는 활기차게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멕시코에서 온 캐시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인지 100일이 채 안되어 보이는 갓난아기를 안고 부드럽고 수줍게 앉아 있었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캐시에게 다가가 “아기가 정말 예뻐요”라고 말해주니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Neighbor day’ 이후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콜럼버스와 캐시를 자주 마주쳤고 농담을 좋아하는 콜럼버스는 실없는 이야기로 나를 웃겨주었다. 하루는 캐시가 찡얼거리는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온 나와 마주쳤다.

 “커피 한잔 줄게, 잠깐 집에 들어와.”

 아기를 안고 낮잠을 쫓고 있던 캐시가 날 보자 반가워했다. 내일 학교에서 발표해야 할 자료 준비로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캐시의 무료하고 지친 눈빛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캐시와 콜럼버스의 보금자리로 들어가니 7살, 10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 두 명의 아이들이 오락기에 열중해 있었고 비좁은 방안에는 큰아이들의 짐과 아기 기저귀, 분유 등 살림살이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있었다. 콜럼버스와 캐시 사이에 여자아기 한 명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두 아이들도 있었냐고 물었더니 ‘세 아이 모두’ 콜럼버스의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불쑥 알게 된 그들의 가정사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고  큰아이들과 잠시 놀다가 헤어졌다.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간식을 챙겨 먹고 있을 때였다. 학교 숙제를 하려니 졸음이 몰려왔다. 느닷없이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밖을 확인하니 콜럼버스가 서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캐시랑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려는데 너도 같이 가자! ” 그가 물어보았다.  졸리기도 했고 지금 낮잠을 자기보다는 바깥바람을 쐬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그들의 산책에 따라나섰다. 큰 아이들이 먼저 앞장서 걷고, 콜럼버스, 캐시와 아기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명이서 길을 따라 집 근처 한 바퀴를 크게 걸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콜럼버스의 웃음기가 걷힌 예리한 눈빛이 산책하는 내내 떠올라 찜찜했지만 그는 여전히 유쾌하게 농담을 하며 걸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고 동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니 기분이 좋아져 나의 예민한 마음도 금세 부드러워졌다.


 그 이후로 여름 동안 몇 번 더 그들과 오후의 산책을 즐겼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캐시가 혼자서 갓난아기만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전화기를 잠깐 빌려 달라고 용건을 꺼냈다. 동거남인 콜럼버스의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 몰래 나에게 전화기를  빌려달라는 상황이 다급해 보여서 이유를 묻지 않고 전화기를 내어주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자 캐시는 스페인어로 잠시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비치기도 하고 짧지만 강렬한 통화를 마쳤다. 조심스레 누구와 통화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막장드라마가 아니기를’...... 통화한 사람은 캐시의 전남편이자 세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했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닿고 있어 하루에도 수많은 멕시코인 들이 국경을 넘어와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일을 하고 있었고 캐시의 전남편도 같은 상황이었다.

 “전남편이 너와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어?” 내가 물었다. 캐시는 “뮤쵸 뮤쵸”라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스페인어가 섞인 그녀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인터넷 스페인어 사전에서 뮤쵸를 검색했다. * mucho : (부사) 많이, (부정문) 별로.

 많이 보고 싶다는 것인지, 별로 안 보고 싶어 하는 건지 캐시의 상황을 더욱 모르겠고 복잡한 타인의 사생활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랭귀지 스쿨을 다니는 같은 반 일본인 친구가 콜럼버스의 집 바로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그 일본 친구를 보면 ‘baby face’라고 씩 웃어 보이곤 했는데 일본 친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불쾌해했다. 하루는 일본 친구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날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콜럼버스가 문을 쿵쿵쿵 세게 두드렸고 물건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 밤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다짜고짜 찾아온 그의 행동이 상식 밖이었고 너무 겁이 났단다. 생각해보니 나도 콜럼버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적잖이 당황하였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생각나 일본 친구의 당혹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의 일을 듣고 난 후 나도 콜럼버스의 행동이 어딘지 수상쩍어 보였기도 하고, 바쁜 일들이 생겨 한동안 콜럼버스와 캐시를 보지 못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지만 생활은 여전히 단조롭고 지루했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여느 때처럼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집 근처 성범죄자 조회를 할 수 있는 www.familywatchdog.com 사이트를 발견하였다. 호기심에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입력하였더니 타운하우스 내에 범죄자가 조회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성범죄자 정보를 열어 집 호수와 사진을 확인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잭 하이, 소아성범죄자. 이름은 달랐지만 맙소사 그는 분명 콜럼버스였다.


 쿵쾅거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니 앞으로 혼자 있을 때 절대로 문을 함부로 열어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조심하면 될 일이지만 캐시와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다. 백일 된 여자아기와 7살쯤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성범죄자 , 더구나 소아성범죄자와 살고 있었다.  


 캐시는 어떻게 콜럼버스와 만나게 되었으며 콜럼버스의 소아성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불현듯 콜럼버스의 매서웠던 눈빛이 떠올랐다. 내가 캐시에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면 콜럼버스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전의 용기는 사그라졌다. 그날 밤을 뒤척뒤척 보내고 며칠의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다 아무래도 계속 마음에 걸려 상황을 보고 캐시에게 말을 해주기로 결심을 했다.


 날이 밝자마자 캐시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불이 커져있었고, 그들의 맞은편에 사는 일본 친구도 그들을 봤고, 인기척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루아침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캐시에게 전날이라도 말을 해줬어야 했다. 좀 더 서둘러 용기를 냈어야 했고, 캐시가 그를 따라가지 않았어야 했다.

 “콜럼버스를 믿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나의 주저함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망연자실하며 그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모두 내 탓일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나의 용기로 몇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기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 최선을 다했었다. 거기까지였다.’

 타인의 삶에 중요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인형 같았던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길 간절히 빌며 나의 무거웠던 마음을 애써 변명해본다.

State flowers of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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