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새로운 경험
Oh the weather is frightful
아, 밖의 날씨는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춥지만
The fire is delightful
벽난로에 불이 붙으니 정말 기분이 좋아지네요.
Since we’ve no place to go
우리는 달리 갈 곳도 없으니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눈이 오게 해 주세요. 눈아 내려라 눈아 내려라
하루 종일 미국 전역의 라디오 채널에서는 캐럴송이 흘러나왔고 수십 번 들었던 <Let it snow>를 절로 외울 정도가 되니 크리스마스도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Yes와 No로만 대답할 줄 알았던 나도 반벙어리 신세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니 슬슬 새로운 환경이 궁금해졌다.
하루는 걸어서 5분 거리인 집 옆의 nursing home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방문을 했다. 노인들이 계시는 요양원인 그곳에 혹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당장 일 손이 필요했던 요양원 오피스에서는 나를 필리핀계 담당 매니저, 크리스틴과 간단한 인터뷰를 하도록 했고 짧은 인터뷰 후 양로원의 구석구석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미는 일에 나를 배정하였다.
학교가 끝나면 nursing home으로 곧장 달려가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신구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었다. 완성된 장신구들이 제법 많이 쌓이자 본격적인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시작했다. 환한 대낮에 시작한 일은 해가 어둑어둑해져서야 끝났고 몸은 고단했지만 점점 화사해지는 요양원의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어 담당 매니저 크리스틴이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캐럴송에 맞춰 앞에 나와서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가벼운 율동을 해줄 수 있는지 부탁을 했다. 느닷없이 사람들 앞에 나와서 재롱잔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내 율동을 따라 하며 즐겁게 웃고 행복해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졌다.
한해의 큰 행사를 잘 마무리해준 것이 고마웠는지 매니저 크리스틴이 자신의 집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남편이 한국에 잠시 귀국하여 홀로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던 나는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크리스틴의 집에 도착하니 크리스틴의 미국인 남편과 나를 제외하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차려 놓은 맛있는 필리핀 음식을 먹으며 미국에서 처음 보내는 파티를 즐겼다. 밥을 다 먹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 파티에 온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온 물건을 한가득 챙겨 우르르 어딘가로 갈 채비를 했다. 새로운 파티인가 생각하며 돌아올 시간이 적당한지 확인한 후 나도 함께 따라나섰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려 다운타운에 도착하였다. 나와 크리스틴이 탄 차가 먼저 도착하고 뒤를 이어 나머지 다른 일행들의 차가 도착했다. 파티 장소가 어디 일지 궁금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자들의 줄만 눈에 뜨일 뿐 크리스마스 당일의 다운타운은 춥고 썰렁했다.
우리 일행의 차를 본 한 노숙자가 차에 점점 다가왔다. 크리스틴과 그녀의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밝은 미소와 함께 준비해온 커다란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God bless you and Merry Christmas”
그 봉투 안에는 약간의 음식과 겨울을 날 수 있는 두툼한 옷들이 들어있었다.
한 무리의 노숙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후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역 부근으로 이동하여 준비해온 선물을 다른 노숙자들에게 직접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천사가 아닐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하여 십 년이 넘도록 매년 크리스마스에 작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그들의 모습은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보는 듯했다.
나도 조심스레 일행을 따라 벤치에 앉아있던 노숙자 중 한 명에게 다가가 “God Bless you and Merry Christmas” 인사를 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니 땡큐라고 환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노숙자를 만나면 두렵고 멀리 하고 싶었던 이전의 생각은 금세 달아나고 머릿속에는 나의 작은 나눔에 기뻐하는 상대방의 모습과 그들의 허기와 추위를 어서 달래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 날 오후 나는 열심히 “God Bless You and Merry Christmas”를 외쳤다.
크리스마스 기간만 하려고 했던 자원봉사에서 뜻밖의 보람과 행복을 느껴 봉사 기간을 더 연장하였다.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셨다. 병실을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펴볼 뿐인데 나의 작은 도움에 고마워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고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하셨지만 이내 멀리서 온 내가 낯선 땅 미국에서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고 축복을 빌어 주셨다.
요양원에 어르신들의 자녀가 오는 날에는 그들도 한국의 여느 부모들과 같았다. 멀리 있는 나를 불러 세워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소개를 하며 자녀와 손주들의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할아버지 정말 자랑스러우시겠어요!”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떠날 때까지 흐뭇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어머니날인 마더스데이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파티 풍선을 손에 꼭 쥐어드리며 “날아가지 마세요” 찡긋 윙크를 건넸더니 그 말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할머니는 한참을 크게 웃으셨다.
그분들의 미소는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내가 도움을 주러 간 봉사활동이었지만 그분들이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다. 그 시간들을 통하여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정신과 마음이 건강해졌던 가치 있는 배움의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신자에게는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미사를 드리는 날이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내가 한국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에게 감사와 따뜻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이야기를 나누는 연말 모임이었다. 애석하게도 크리스마스에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을 돌아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캐럴송을 들으며 지구촌 축제 같은 들뜬 그 분위기를 즐기느라 바빴다.
결혼을 하고 바로 건너간 미국 생활은 기대와 달리 무료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처럼 외국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고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심지어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일도 힘들었다. 싱글일 때와는 달리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타국 생활은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관계를 대폭 축소시켰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에 사람들과 북적북적 시간을 보내다 낯선 미국에서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러 참여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하여 진짜 크리스마스를 만났다. 예수님이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남을 위하여 내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느꼈던 황홀한 크리스마스의 소중한 추억을 얻게 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그 날'의 밝은 햇살과 요양원 어르신들의 포근한 미소가 떠오른다.
앞으로 보내게 될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이웃에 감사하고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의 사랑을 나누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