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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May 03. 2021

낭만의 도시 파리가 씁쓸한 이유

 사람들은 원하는 말을 듣고 싶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기를 원한다. 그녀의 맑고 부드러운 눈매와 친절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름다운 도시 프랑스 파리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다. 파리에서의 첫째  아침은 빵집 ‘Paul’에서 간단히 빵을 먹기로 했다. 담백하고 쫄깃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빵에 커피를 마시니 이곳이 천국이었다. 맛이 없는 빵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프랑스가  빵의 성지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되었다. 심지어 맥도널드 햄버거마저 두툼하고 촉촉한  덕에 패스트푸드가 아닌 전문 세프의 요리 같았다.


 빵으로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다. 10월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기대했건만 가을이 아닌 초겨울 같은 파리의 이상기온으로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몸이 으스스해졌다. 한국에서 얇은 옷만 가져왔던 우리는 파리의 비바람을 피할 재킷을 사러 쇼핑몰 라빌레 빌리지(La Villa Village)로 목적지를 정했다. 쇼핑을 마치고 어른들의 쇼핑을 기다리느라 지친 아이들을 위해 쇼핑몰 바로 한 정거장 옆의 디즈니랜드에 들러 오후 시간을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의 일정이었다.


 라빌레 빌리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일반 지하철이 아닌 RER 노선을 타야 했다. RER 티켓을 구입하기 위하여 지하철역 자동 발매기에서 English 화면을 선택하고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까르네, RER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려니 처음 사용하는 기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을 하고 있었다. 그때 유니폼을 착용한 선한 인상의 한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녀에게 우리의 목적지를 이야기하니 그녀는 RER 티켓을 구매할 수 있도록 불어 화면에서 재빨리 티켓 정보를 입력하였다. 귀에 닳도록 들었던 파리지앵의 불친절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다정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와 남편은 무장해제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신용카드로 계산할 것인지 현금으로 할 것인지를 물었고 현금 할인 혜택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주었다. 남편은 현금으로 어른 2명, 아이 2명의 티켓 발권을 부탁했다. 그런데 티켓 값이 €100였다. 지하철 티켓 비용이 €100 한국 돈으로 13만 원이 넘는다고?? 아무리 라빌레 빌리지가 파리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라지만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다.


 수상함을 느낀 나는 그녀에게 내가 찾은 정보를 보여주며 티켓 비용은 €7 미만으로 알고 있는데 왜 €100인지 물었더니 내가 찾은 정보는 예전 정보고 자신이 발급한 티켓은 지난달 새롭게 리뉴얼한 RER 철도 종일 패스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티켓이라고 했다. 남편은 여자가 입고 있는 유니폼에 달린 배지는 지하철 역무원의 표시인 것 같다고 신뢰를 했고 나의 의심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100 건넸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우리가 타야 할 방향을 몇 번이고 확인시켜주고 서둘러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미심적인 마음이 컸지만 들어오는 기차가 제 방향인 걸 확인하고 한숨을 돌렸다. 2층으로 된 기차는 매우 좋은 컨디션이었다.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녀의 친절을 의심했던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모습은 꽤 낭만적이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지나치는 모든 모습을 눈에 꾹꾹 담아두고 싶었다. 한 시간쯤 조용한 기차에 앉아서 사색도 하고 여유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지품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가기 위하여 투입기에 티켓을 넣으려는데 빨간색 불이 들어오며 ‘삑’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응? 잘 못 넣었나 보다 생각하며 티켓을 다른 투입구에 넣어보니 역시나 ‘삑’ 소리만 나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남자가 다가왔다. 카키색 재킷에 유색 완장 같은 것을 차고 있었던 그는 자신을 역무원이라고 이야기했고 우리의 티켓을 확인하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그는 우리의 대답을 듣고 무심한듯 핸드폰에 무언가를 적은 후 한국어로 들려주었다.

 “당신은 사기를 당했습니다.” 사기꾼처럼 보이는 그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다시 물어보니 우리가 산 티켓은 앙팡 티켓으로 유아 티켓이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울랄라 울고 싶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보기 좋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고 분했다. 정말 친절했던 그녀를 믿고 싶었는데 그녀는 사기꾼이었고. 사기꾼처럼 보이는 그가 진짜 역무원이었다. 내가 경찰에 지하철의 그녀를 신고하고 싶다고 하니 그 여자 사기꾼을 잡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안됐지만 잊어버리라고 사기를 당한 우리를 측은하게 여기고 벌금을 받지 않고 출구로 그냥 내보내 주었다.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한국에서부터 꼼꼼하게 조사를 했었는데 친절한 파리지앵에 홀려 판단이 흐려졌다. 나와 남편이 당한 사기 수법은 아주 전통적인 지하철역 사기였다.


“파리 사람은 절대 먼저 나서서 친절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파리지앵은 정말 불친절한가?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그들도 대도시에 사는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여유가 없고 바쁘다. 어느 나라든 소매치기도 있고, 사기꾼도 있다. 심지어 중국 북경에서는 더 많은 현금을 소매치기를 당했지만 황당했을 뿐 “좀 더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내 실수다”라며 툴툴 털어버렸다.


 그런데 왜 유난히 프랑스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래갔던 것인지 생각해보면 파리의 로망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파리에 대한 환상은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든 쉽게 낭만으로 다가왔다. 예술이 생활인 도시에 사는 파리지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느끼다 파리의 소매치기와 파리지앵의 불친절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파리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놉! 그저 나의 높은 기대감으로 그들을 바라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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