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 in Dec 28. 2021

나 항상 술잔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니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가벼운 술자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그를 떠올리니 술 냄새가 나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를 大踏 따타 라고 불렀다. 大踏는 ‘크게 밟다’라는 뜻인데 술에 취해 갈지자(之)를 그리며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을 보고 이름을 지었나 생각이 들만큼 그는 술을 지독히 사랑하는, 술 귀신이었다. 그런 그를 술기운에 쳐다보면 양조위의 우수 가득한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주성치의 표정이 겹쳐진다.


술이 벗을 만나니 술 천 잔이 적고

酒逢知己千杯少。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반 마디 말도 많구나

话不投机半句多

호수에 (배를 띄워) 한 잔 술을 마실 줄 안다면,

遥知湖上一樽酒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친구도 능히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能忆天涯万里人。

- 구양수(歐陽修)


 “干杯 건배!”


 立水桥 리수이치아오 근처의 허름한 술집에 그가 있었다. 그는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나에게 대뜸 “酒逢知己千杯少 ” 라고 했고 나는 재빨리 “话不投机半句多”라고 했다. 아싸! 며칠 전 수업시간에 배웠던 고사성어를 이렇게 빨리 써먹다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의 그는 호기롭게 마지막 구절까지 읊고 “干杯 건배”를 외쳤다.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그는 중간에 합류한 나와 친구들에게 총화빙과 마이상슈를 권했다. ※ 총화빙(葱花饼)은 우리나라의 (파가 들어간) 전병, 마이상슈(蚂蚁上树)는 잡채 같은 음식이다.

 대화가 무르익자 그는 일행들에게 느닷없이 노래를 한 곡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 자리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를 쳐다보았다.

 “한국에서 온 00 이의 노래 한번 들어볼까요?”

 “갑자기?! 왜 나를!! 아! 어쩌지......” 발표 공포증이 있는 데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어떤 노래 가사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를 받아 적으며 불렀던 이선희 언니의 ‘알고 싶어요’가 생각났다. 왜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켰으니 빼지 않고 불렀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

 가창력을 요하는 명곡인 데다 한창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낯선 한국어로 고요한 노래를 부르니 분위기는 잠시 숙연해졌다. (그들은 한국의 아리랑을 기대했을까??)


 얼어붙었던 분위기를 그가 살렸다. 그는 중국의 국민가요인 주화건의 <펑요 朋友>를 불렀다. “这些年 一个人 쩌시에 니엔 이거런 风也过 雨也走 펑예구어 위 예조 우~♩♪”그의 열창으로 분위기는 다시 후끈해졌고 술집 내의 손님들도 같이 따라 불렀다. 나도 알고 있는 노래여서 함께 흥얼거렸다. 노래가 다 끝나자 그는 돌연 밖으로 나가서 표면이 매끄러운 벽돌 하나를 주워왔다. 그리고 그 돌덩이 위에 일필휘지로 한자를 써 내린 후 나에게 건넸다. 멋진 시구를 적어주었나 내심 기대하며 한 글자씩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来自韩国的00长得凑合。”

 (한국에서 온 00은 생김새가 아쉬운 대로 그럭저럭이다.)

 “이 얄미운 술주정뱅이 같으니라고!!!”


 누가 봐도 아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는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날 때마다 술에 취해 있는 모습에 그의 직업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그의 직업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가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정식 작가이고, ‘大踏 따타’는 그의 필명이라고 했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그는 중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단다. 친구가 그의 글을 아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달라 보였다. 그를 몇 번 더 만나자 그에게 술은 예술의 영감을 주는 재료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는 나를 만나면 중국어 발음을 한 자 한 자 엄격하게 교정을 해주었다. 1부터 100까지 정확하게 발음을 마쳐야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그때 마셨던 미지근한 연경 맥주가 얼마나 달달하고 구수했던지! 난 그의 장난이 밉지 않았다.


 사람들은 장난을 즐기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를 좋아했다. 그의 한마디는 가벼운 듯했으나 묵직했다. 그는 나와 친한 중국 친구의 친구였다. 채식을 하고 술을 입에도 되지 않으며 명상을 좋아하는 내 친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꼭 빠져서는 안 되는 술을 앞에 두고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다양한 세상일들에 토론을 즐기고, 자유를 이야기하며 더 이상의 자유가 필요 없어 보였지만 더 많은 자유를 위해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들은 한 달 반가량 중국 남방 지역으로 배낭여행을 계획하며 나에게도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거절을 했다.

 그 시절 나는 곧 다가올 귀국 이후의 진로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한시바삐 취업에 필요한 어학실력을 입증하기 위하여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한국인들이 가득한 HSK(한어수평고사)준비 학원에서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글자 없는 책이라고 한다. 학교와 학원에서 책으로 배우는 공부 대신 자유로운 영혼의 그들과 여행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중국을 바라보는, 세상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원어민들과 생활하며 그야말로 살아있는 중국어를 배웠을 것이다. 여행도 하고,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눈에 담고, 숨겨진 뒷이야기도 듣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을 유쾌한 상상에 빠져본다.


 술집에서 자주 어울렸던 몇몇 사람은 현재 중국에서 꽤 유명한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기대했던 그의 성공 소식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얽매이지도 않고 속세의 유명세에도 연연하지 않고 그가 자유롭게 자신만의 길을 잘 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I HOPE FOR NOTHING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I FEAR NOTHING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I AM FREE 나는 자유롭다

- Nikos Kazantzakis


《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보면서 大踏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나에게 중국인 조르바였다.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거꾸로 가는 그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