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포기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숨이 턱 막힐 듯한 8월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학생 기숙사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안경을 쓰고 있었던 그는 중국 학생 기숙사에서 외국인 기숙사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마와 안경에 땀이 찼는지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는 내가 건넨 차가운 아이스티를 단숨에 마시고 더위를 식혔다.
중국 현지에 있지만 학교 수업 외에 중국어 공부를 보충할 필요가 있었기에 지인을 통해 같은 학교의 과외 학생을 구했다. 이왕이면 중국 경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똑똑한 남학생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국제 비즈니스과에 다니고 있는 남학생 한 명을 소개받았다.
그는 전형적인 빈틈없는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그를 소개해준 친구가 평균 과외비용이 시간당 15위안인데, 그는 실력이 좋아 30 위안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공감대가 잘 맞아 수업 중에 삼천포 수다로 빠질 염려는 없어 보였기에 공부하기에 아주 적격이었다. 영특해 보이는 그의 첫인상을 믿고 그를 나의 과외 선생님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신문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그가 한 주의 주요 기사 두세 개를 찾아와서 새로운 단어를 알려주고, 읽고 해석하면서 기사에 관련된 배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즈니스 용어와 시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직장생활을 하다 중국에 왔던 터라, 그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는 한국 기업과 직장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서도 할 이야기가 길어지면 종종 그를 데리고 학교 앞의 한국 음식점에 갔다. 그는 한국음식을 정말 잘 먹었고, 특히 뜨거운 돌솥비빔밥을 좋아했다. 그랑 단둘이 먹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의 여자 친구랑, 때론 내 절친한 한국 친구와 동석하기도 했다. 그는 나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붙임성 있게 잘 따랐다.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점의 식사비용은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기에 그에게 나는 밥 잘 사 주는 한국 누나였다.
똑똑하고, 성실한 그는 나무랄 데 없는 선생님이었다. 철두철미해 보이는 그였지만 여자 친구 앞에서는 숙맥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날이면 자주 의기소침해졌던 것을 보면 같은 여자로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구애를 거두어라라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다. 그와 공부를 한 시간이 오래되어가니 남동생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귀국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귀국을 앞두고 작별 인사를 위해 그와 단골 한국 음식점에서 만나 돌솥비빔밥 두 그릇을 주문했다. 하얼빈으로 얼음 축제를 보러 가면서 거금을 주고 샀던 남녀공용 빅사이즈 노스페이스 겨울 재킷과 중국에서 썼던 유용한 물건들을 챙겨 왔다. 옷 입을 때 누나 생각해. 라며 생색을 냈다. 돌솥비빔밥의 탄 누룽지까지 야무지게 긁어먹고서야 아쉽게 작별을 고했다.
"保重!保持联系吧。 몸조심하고, 계속 연락하자!”
한국에 돌아오니 학생이었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았다. 국제무역 중국어와 이론을 공부했지만 역시나 비즈니스 실무는 차원이 달랐다. IT 제조 회사의 해외영업 부서에서 중국어 기술 통/번역까지 해야 하느라 밤마다 머리를 쥐어뜯었고 막히는 부분이 나올 때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을 했다. 그는 내가 번역한 부분을 꼼꼼하게 교정해주었다.
첫 회의 통역으로 북경 출장을 갔을 때 긴장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 팽팽한 줄다리기 같았던 회의는 서로의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고 10시간 만에야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짬을 내어 그를 만났다. 중국에서 있었을 때 보다 6개월의 짧은 업무 시간 동안 배운 중국어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중국어가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고된 업무에 중국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만 중국어로 밥을 먹고살고 있으니 내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그는 스승의 할 일이 생각난 듯 나에게 중국인과 비즈니스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일러주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어느 날 핸드폰 위에 낯선 번호가 찍혔다. 학생이었던 그가 어느새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며 연락이 왔다. 사람들 틈에서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감색 정장 슈트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무스를 바른 낯설은 그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졸업하고 얼마 뒤에 취업을 했다는 그는 활짝 웃으면서 명함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명함에는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ㅇㅇㅇ라고 적혀있었다. “외교부에서 일한다고? 진짜 축하한다. 출세했네! 출세했구나.”
내 가족의 일인 것 마냥 뿌듯했고, 그동안 성실하게 공부해온 그의 노력들이 생각나 더욱 기특했다. 핵심을 잘 파악하고 어떤 질문이든 금세 이해하고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그가 남달랐다. 그가 잘 될 줄은 일찍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빠른 결실을 눈앞에서 확인하니 더욱 기뻤다.
한국에 출장 온 그의 모습에서, 북경 첫 출장 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찼던 첫 마음과 달리, 나는 지쳐있었다. 문득 식당 안쪽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푸석한 얼굴, 짙은 다크서클, 우울한 표정, 내 꼴이 참 꾀죄죄했다.
사실 나는 1년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에 무거운 책임감이 더해지니 옴짝달싹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자주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고, 자주 답답해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난 기쁨은 잠시 밥값 걱정이 먼저 들었다. 밥 한 끼 산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달에 어떻게 해결되겠지 했다. “난 배불러 너 먹는 것만 볼게.” 식당 종업원에게 돌솥비빔밥 한 그릇만 달라고 했다. 뜨끈한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어서 먹으라고 권유하자 그는 북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뜨거운 돌솥 비빔밥을 호호 불지도 않고 재빠르게 잘 먹었다.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그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해 질문을 했다. 새로 시작한 업무가 힘들고 일이 많아 잠잘 시간도 없다고 불평했지만 분명 들떠있는 그의 모습에서 신입사원의 열정과 풋풋함이 느껴졌다. 그는 익숙하게 돌솥 비빔밥 바닥의 누룽지까지 다 긁어먹은 후 한국에 오면서 나를 위해 챙겨 온 컴퓨터 용어 사전과 철관음차(茶) 그리고 고급 포장지에 담긴 중국 전통 젓가락 세트를 식탁 위에 조르르 펼쳐 보였다. 갑자기 울컥해져 시야가 흐려졌다. 밥값을 계산하려고 서둘러 일어나니 그가 나를 가로막으며 내 카드를 물리쳤다. 계산대 앞에서 짧은 실랑이를 끝내고 서로의 일정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나처럼 어리석은 선택으로 마음고생하지 말고 순탄하게 직장 생활하기를 바랐다.
그날 명동에서 마포까지 두 시간 남짓 터벅터벅 걸었다. 돌솥비빔밥 한 그릇에도 벌벌 떨 정도로 살면서 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하여 일했던 걸까? 내 선택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오래 끌 이유가 없었다.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9시쯤 되어 집 근처에 도착하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분식집에 들어가 돌솥비빔밥 한 그릇을 시켜 밥 한 톨 남김없이 바닥까지 싹싹 해치웠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고생한 게 억울하고 아까워서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포기해야 옳다. 이곳에서의 내 열정과 진심의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됐다. 그동안 애썼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가 어쩌면 방향을 잃고 버티기만 하고 있던 나에게 계시를 주기 위해서였나 싶었다.
포기하라! 포기를 선택하는 것도 용기다.
인생은 어렵다. 일상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가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수많은 선택을 했고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평정이 깨지고 입맛을 잃을 때면 돌솥비빔밥 한 그릇을 주문해서 깨끗하게 먹었다. 그러면 다시 사는 맛이 나서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의 한국 출장 이후로 이메일을 통해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다 서로의 바쁨으로 연락이 소원해졌다. 결혼하고 스위스에서 파견 근무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겨버렸다. 돌솥비빔밥 열 그릇은 거뜬히 사 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니 문득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살다가 덜컥 누군가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리움은 짙어진다.
대문 사진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