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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Apr 03. 2021

슬픔을 위로받는 법

그녀의 다정한 위로

 그녀는 최강 동안이었다. 같은 반이 되어 첫 수업시간에 본 그녀는 내 또래 같았다. 조금씩 서로를 알게 된 후 그녀가 나보다 열 살이나 더 많다는 것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오랜 직장 생활로 사람들을 대하는 매너가 우아하고 세련되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높임말 때문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격의 없이 친구가 되려면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했지만 외국에서는 모두 서로의 이름을 부르니 관심사가 맞으면 나이를 잊고 쉽게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고 우리는 동양인이라는 공통분모와 관심사가 잘 맞았다.


 한국 배우 이병헌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그녀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나와 같이 자주 한국 음식점에 가서 한국 음식을 먹었다. 그녀는 내가 해주는 서투른 한국음식도 좋아했다. 때론 그녀의 집에 가서 나의 레시피로 한국 음식을 가르쳐주었는데 그중 감자를 갈아서 넣는 나의 명품 깍두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남편이 길러왔던 강아지 3마리,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들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관리하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강아지와 고양이도 그들의 가족이지만 그녀는 입양아로 자란 남편에게 진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생물학적인 한계의 나이가 곧 다가오니 임신이 어려울 것 같다고 초조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임신을 했다. 임신을 기다리던 그녀였지만 제 일처럼 기뻐하며 나에게 튼살 방지 크림을 선물해줬다. 임신 초부터 미리 튼살크림을 바르면 배가 트지 않으니 꼭 챙겨 발라야 한다고 조언해주며 나의 임신소식을 그 누구보다 축하해줬다.


 임신임을 알고부터 갑자기 시작된 입덧으로 속이 메스꺼웠던 나는 만사가 귀찮아 집에서 누워있었다. 아기가 생기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미국 땅에서 부모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신랑의 월급으로만 아기와 함께 생활이 가능할까? 어서 운전을 해야겠다! 산후조리는 어디로 가야 하지? 등등 태아와 함께 있는 행복한 현재보다 곧 닥칠 미래의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 병원을 다녀야 하니 산부인과에서 쓰일 영어 단어도 알아두고, 질문 리스트도 뽑아 놓느라 마음은 분주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정기진료일 이었다.

 “Something happened.......” 뭔가 잘 못 됐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모니터가 확대되었고 16주 차에 접어든 태아의 모습이 고꾸라져 있었다.

 ‘갑자기 입덧이 사라져서 좋았는데 그때 바로 병원에 왔었어야 했는데, 남편한테 운전을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것 때문이었나?’ 나의 사소한 행동들이 모두 태아에게 악영향을 준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간호사가 빨리 유산 수술을 해야 한다며 절차를 알려주었지만 믿기 힘든 사실을 그저 멍하니 흘려들었다. 간호사가 성별을 알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간호사는 Baby girl이라고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내려왔다.  


 드라마 몇 편을 보니 한 달이 흘렀다. 그러나 난 아직 괜찮지 않았다.

 ‘슬플 땐 날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아직 괜찮지 않은데 사람들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내게 금세 괜찮아지는 표정을 기대한다. 슬픔을 드러내기보다는 괜찮은 척 밝은 표정으로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쉽고 안전하기 때문에 안간힘을 내서 괜찮은 척한다. 애를 쓰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 애쓰지 말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다.’

 밝고 명랑해 보이나 뜻밖의 슬픈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그때의 나의 속마음이었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쉽게 드러낼 것 같아 연락을 애써 물리쳤다. 그러나 나의 안부를 긍금해하는 아사코의 연락은 물리치지 못했다. 내 속마음을 꽁꽁 잘 숨기고 그녀가 걱정하지 않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서로 대화를 잘 주고받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가라앉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나라 사람인 그녀를 통해 나의 현실을 깨닫지 않아도 되니, 감정이 절제되어 의사소통에만 집중하면 기분 좋은 만남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 나의 우울한 기분을 환기시켜주었다. 우리는 타코를 먹으러 멕시코 레스토랑에 자주 출몰했고 랭킹이 높은 브런치 레스토랑에도 갔다. 나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저렴하고 질이 좋은 브랜드의 쇼핑몰로 이끌었고 고가의 주방용품을 스크래치 상품에 한하여 70%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주부들의 천국으로 안내했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다녔던 많은 곳은 그녀가 직접 발품을 팔았거나 그녀가 열심히 알아낸 알짜배기 정보였다.


 그녀의 집은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이나 걸렸다. 운전이 서툰 나를 직접 태우러 왔고 헤어질 때 다시 집에 데려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집구석에만 쳐 박혀 하루 종일 남편이 오기만을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떡하든 나에게 햇살과 바람을 느껴보라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절실하게 혼자 있고 싶어 했는데 막상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의 힘든 시기를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녀가 나와 같이 보내준 다정한 시간들 덕분에 나는 사람들의 따스한 위로를 기꺼이 받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산 마르코스  아웃렛 가는 길에 들렀던 Buc-ee's 휴게소에서 먹었던 Kolaches, 우리의 아지트였던 멕시코 음식점 chey의 타코, 브런치로 먹었던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고기와 베이컨이 들어있던 ‘쌀’ 대학 앞의 햄버거, 운세를 보러 들렀던 터키 음식점의 쓰디쓴 커피. 그녀의  친절한 일정이 모두 생각이 난다.


 일본 사람들과 친구를  때는 서로 간의 거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편견을 과감히 던져줬던 그녀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녀를 위한 풀코스 한국 투어를 시켜 주리라.  강아지와 캣맘이  그녀와 아들  맘이  . 우리가 만나면 어떤 조합이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나의 명품 깍두기를 다시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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