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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Jan 16. 2022

사교 여왕의 비결

그녀의 맛

 “오늘 메뉴 뭐야? 냄새 진짜 좋다!”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

 그녀는 들어오는 손님을 짧게 맞이하면서 오코노미야끼를 만드느라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죽에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오사카식과 달리 그녀가 준비한 것은 히로시마식 이라고 했다. 나도 그녀의 옆에서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 만드는 것을 도왔다.


※ 재료 : (여자 얼굴이 그려진) 오꼬노미야끼 파우더, 양배추, 숙주, 새우, 베이컨 (또는 삼겹살), 야끼소바 면과 소스, 계란, (여자 얼굴이 그려진) 오꼬노미야끼 소스, 마요네즈

※ 만드는 법

1. 먼저 반죽을 한 국자 떠서 동그란 모양으로 얇게 부친다.

2. 반죽 위에 채 썬 양배추를 수북하게 올리면서 사이사이에 숙주, 새우, 베이컨(혹은 얇은 삼겹살)을  넣는다.

3. 쌓아 올린 재료 사이에 오꼬노미야끼 반죽을 살짝 뿌려 서로 떨어지지 않게 모양을 잡는다.

4. 높이 쌓인 양배추 탑을 충분히 익히기 위해 한참 동안 꾹꾹(있는 힘을 주어서) 누르다가 과감하게 반대쪽으로 뒤집는다.

5. 다른 한쪽 프라이팬에서는 야끼소바 면과 소스를 넣고 조리한다.

6. 완성된 야끼소바 위에 4의 오꼬노미야끼를 올린다.

7. 날달걀을 깨뜨려 오꼬노미야끼 크기와 같게  펴준후 오꼬노미야끼 위에 올려준다.

8. 오꼬노미야끼 소스와 마요네즈를 벌집 모양으로 뿌리고  원하는 양만큼 가쓰오부시를 올린다.

9. 1인 1 오꼬노미야끼를 맛있게 먹는다.

 준비해 놓은 접시 위에 완성된 오꼬노미야끼 한 장을 올려놓았고 같은 방법으로 그녀는 별로 어렵지 않은 듯 총 10장을 뚝딱 만들어냈다. 8명의 손님들은  그녀의 푸짐하고 정성 가득한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며 아사히 맥주를 마셨다. 그녀의 작은 스튜디오는 심야식당이 되어 오밀조밀 모여 앉아 서로의 이방인 적응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소박한 그녀의 음식을 먹으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그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녀는 일본 오카야마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영어의 필요성을 느껴 1년 예정으로 미국에 언어연수를 왔다. 텍사스의 한 대학교 ESL 수업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의 영어는 유창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어 악센트가 강하게 섞여 있었지만 친구들은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도 친구들의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요즘에야 한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당시 인터내셔널 친구들에게 한국보다는 일본의 인기가 아주 좋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남학생들부터 일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남미나 유럽 친구들 모두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쉬는 시간에 그녀의 필통이 열리면 어디선가 반 친구들이 그녀 곁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녀의 작은 필통은 아기자기한 문구류로 가득했다. 지우개, 연필, 테이프, 볼펜 등으로 가벼운 수다가 시작되어 어느새 캐주얼한 파티 약속이 만들어졌다.

 

 조용하면서도 사교적인 그녀는 겸손하고, 작은 일에도 고맙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빼어나게 예쁘거나, 눈에 띄거나 하진 않았지만 귀엽고, 사근사근한 그녀의 태도가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의 호감을 샀다. 어디를 가든 누구와도 쉽고 순조롭게 친구가 되는 그녀의 사교성이 놀라웠다. 그녀가 사람을 끄는 이유가 비단 친절한 리액션과 신기한 물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비밀 무기는 따로 있었다.


 그녀의 사교 중심에는 요리가 있었다. 하루는 감기 기운이 있던 나에게 딱 맞는 음식을 해주겠다며 수업 후에 나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갔다. 그녀는 아침에 만들어 둔 밥에 잘게 다진 채소와 미리 만들어놓은 육수를 부어 짧은 시간에 죽을 만들었다. 고소한 냄새에 입맛이 돌았다. 어찌나 양도 딱 떨어지게 만드는지! 음식이 부족한 듯해서 더 맛있었는지,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감탄을 했다.

 쌍따봉 리액션을 연발하며 음식을 먹었던 나에게 그녀는 집에 갈 때 내 손에 닭 모양이 그려진 작은 큐브 형태의 뭔가를 쥐어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떤 요리든 맛이 살아날 거야.”(요린이였던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건넨 것은 국물요리에 탁월한 맛을 더해주는 마법 가루 치킨스톡이었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갈 때면 그녀는 내게 오니기니를 만들어줬다. 흰 밥 한 덩이를 잡아서 그 안에 일본식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를 넣고 무심하게 양손으로 밥을 몇 번 뭉치면 통통한 삼각형 모양이 되었다. 나도 여러 번 흉내 내어보았지만 어딘가 1% 부족한 삼각형 모양을 보며 원조를 따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한숨을 쉬었고, 그녀는 내 것도 훌륭하다고 격려해줬다. 우리는 서로를 추켜세우며 깔깔 웃어댔고 헤어질 때 그녀는 내 손에 여러 종류의 후리가케 봉지를 들러주었다.

 그녀의 작은 챙김 그리고 그녀와 오니기니를 만들어 먹었던 그날의 유쾌하고 따스한 공기가 쓸쓸한 미국 생활에 얼마나 큰 힘을 불어넣어줬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해줬던 소소한 음식의 맛은 편안함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수월하게 요리를 준비하는 그녀도 편안해 보였다. 그녀의 집도 지나치게 깨끗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고 어느 때 방문해도 늘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미리 많은 준비를 했고,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내가 곁에서 지켜본 사교 여왕의 비결은 편안함이었다.


 내 마음을 흠뻑 뺏어간 사교의 여왕인 그녀와 나는 같은 단지에 살아서 서로의 음식을 나누며 주거니 받거니 칭찬 릴레이를 즐겼다. 내가 그녀에게 끌렸던 것은 비단 그녀의 요리, 리액션, 편안함 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씩씩하고 독립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 나는 늘 남편의 뒤에서 있었다. 식당에 가면 남편이 주문을 하고, 나보다 영어를 잘했던 남편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해결했다.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서 발이 묶여 있는 나를 남편이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결혼 후 갑자기 남편 의존증이 깊어져버린 내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으며 편리함에 안주했다.

 

 반면에 그녀는 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미국에서 차 없이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그녀를 볼 때면 결혼 전 북경에서 씩씩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나보다 우리가 사는 곳의 많은 곳을 탐험해 나갔고, 나는 그저 남편의 보호 속에서 안전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에게 늘 미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설마 했던 한-일 관계가 우리의 우정을 확장시키는데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 두 차례 있었다. 한 번은 그녀가 클린틴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을 보러 영화관에 가자고 했다. 어떤 내용인 줄 모르고 따라갔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군을 미화한 작품의 내용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고의였는지, 우연이었는지. 영화가 끝난 후  굳이 한국인인 나와 왜 이 영화를 보러 온 거였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몰랐다고 과거에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 일본인을 대신하여 한국 사람에게 미안함을 전한다고 머리를 숙이고 거듭 쓰미마센과 쏘리를 말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영화의 선택은 그녀의 고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초 동안 침묵을 지킨 후 겨우 말을 골라냈다.

“네 마음 알겠어. 미안하다고 해줘서 고맙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나도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했고, 그녀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한국에서 나의 첫 보금자리는 좁디좁았던 미국의 스튜디오보다 더 좁았다. 근사한 집에서 그녀에게 대접해주고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집을 단장하고 그녀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 둘만의 요리 시간이 되자 옛 생각이 떠올라 친구들의 근황 이야기도 하고, 각자의 나라에서의 생활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독도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고, 그녀도 나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는 대마도에서 부산이 보인다고 알 듯 모를 듯한 의견을 냈다. 나도 그녀도 사실 정치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서로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울 줄 모르는 성격이었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언급될 때면 일본인인 그녀에게 천불이 날 것 같은 내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음식이란 게 누구와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대화를 하면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더욱 달라지는 것 같다. 그날 저녁 그녀에게 불편함을 한 가득 대접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외국 친구들과는 민감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 나에게 주었던 그녀의 자전거에 매달린 리락쿠마 인형은 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종종 아이들이 리락쿠마 인형을 꺼내어 노는 모습을 볼 때면 그녀의 담백하고 편안한 음식의 맛이 생각나 입안에 침이 고이며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녀가 해준 음식을 먹고 나는 힘을 얻었고 편안해졌다. 이제 나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며 나의 마음을 전한다. 내가 해준 밥 먹고 모두 힘이 나고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코로나가 어서 끝나고 그녀가 한국에 한 번 놀러 왔으면 좋겠다. 사교 여왕의 소소한 비결을 몸소 보여준 그녀에게 편안한 저녁 한 끼 만들어주고 싶다. 다음날에는 그녀에게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를 만들어달라고 졸라봐야지.


*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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