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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Feb 03. 2022

두 남자의 우정

텍사스의 외로운 별


 7월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남자는 달라스 공항에서 휴스턴 부쉬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탑승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담한 국내선 비행기 옆의 자잘한 짐들 사이에 덩그렇게 놓인 그의 커다란 검은색 이민가방과 보라색 캐리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달라스 공항에서 환승 터미널로 나가지 않고 엉뚱한 터미널로 그냥 나와버렸던 남자는 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지쳐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는 목적지인 휴스턴 부쉬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남자의 선배가 공항에 남자를 픽업하러 나왔다. 선배는 남자가 앞으로 머무를 콘도에 데려다주었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세심한 집주인은 픽업트럭에 남자를 태우고 월마트에 데리고 가서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도록 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남자는 미국에서의 첫 날을 보냈다.


 둘째 날이 되자 남자는 오전에 그의 작은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오후에는 공항에 나왔던 선배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정착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전해 들었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다. 퇴근 후 저녁이 되어 허기가 들자 전기밥솥에 밥을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멸치볶음과 매실 장아찌가 보였다. 밑반찬이 행여 가방에서 흘릴 새라 여러 겹의 비닐을 싸서 꽁꽁 매어둔 어머니의 매듭을 풀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멸치볶음이 짠지, 남자의 눈물이 짠지 목구멍이 꽉 막혀 밥을 삼키기 어려웠다. 남자는 그제야 미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남자가 출근한 지 5일째 되던 날 그의 삶에서 특별한 친구가 될 G를 만났다. G는 그와 같은 실험실에서 일하게 될 동료였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에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G는 인도에서 왔다. 동갑내기였던 그들은 미국에 온 시기가 비슷해서인지 서로가 의지가 되면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매일 아침 남자는 점심 도시락을 챙겼다. 메뉴는 항상 똑같았다. 베이컨 볶음밥, 된장국, 김치 조합의 초 간단 점심이었다. 매일 아침 G는 계란 프라이 두 개를 만든다. 그리고 식빵 두 장과 소금을 챙긴다. G의 점심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남자와 G는 점심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G의 점심이 부족해 보였던 남자는 G에게 매일 자신의 볶음밥을 나눠주었고, G는 남자의 밥과 김치를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그들은 가장 먼저 서로를 찾았다. 미국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위해 기뻐해 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OOO, 축하해 논문 통과됐구나! 저널 점수가 높은 곳에 논문이 통과될 때면 차이니스 뷔페에 가서 서로의 노고를 축하해줬다.


 여유롭지 않았던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서로를 잘 챙겼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G는 물건을 구입할라치면 모든 것에 “노노! 베리 베리 익스펜시브!”를 외치며 손사래를 쳤다. 남자가 미국에서 1년을 자전거로 버티다 그의 발이 되어줄 새 차를 샀던 반면 G는 3년을 더 버티고서야 중고차를 구매했다. G가 차가 없는 동안 남자는 자주 G의 발이 되어주었다. 손이 꼼꼼하고 야무졌던 남자는 G의 실험을 재빠르게 도와줬고, 영어가 능숙했던 G는 그의 영어를 꼼꼼하게 보충해줬다.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아낌없이 채워주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남자는 한국에서 실험실 라꾸라꾸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세포를 키우던 시절과 비교해서는 몸이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일에 매여 있기는 매한가지였고 타국에서의 스트레스 강도는 더 높았다. 남자의 유일한 취미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보기였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다운로드해 놓은 영상을 보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고 영상이 올라오지 않는 날에는 그리운 사람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G의 취미 또한 남자와 같았다. G는 시리즈로 올라오는 인도의 신들에 대한 드라마를 즐겨봤고 G 역시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향수병을 달랬다. 새로운 땅 미국에서 하고 싶었던 것도, 가고 싶었던 곳도 마음속에야 많았겠지만 그들은 즐길 겨를이 없었다. 외로울 새도 없었다. 설사 외로움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외로움인 줄 몰랐다.


 남자는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하고, 어둑해진 밤하늘의 별을 보고 퇴근을 했다. 직장에서 하루의 전쟁을 치르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텍사스의 별은 항상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외롭게 홀로 반짝이는 별을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이 났고,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쳐다볼 때면 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주말에는 남자와 G는 실험실의 동료들과 인도 영화를 보러 갔다. 세 시간 동안의 긴 러닝 타임, 영화 중간에 갑자기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발리우드 스타일의 영화가 처음에는 남자에게 어색했지만 점차 인도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영화가 끝나면 그들은 인도 음식점에서 탄두리 치킨, 버터 난 Nann, 마살라 도사와 팔락 파니르(시금치 카레)를 주문하고 다 함께 망고 라씨로 건배하며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남자는 점차 친구가 있는 미국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남들은 쉰다는 토요일에도 매주 스파르타 같은 토요 랩 미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G와 같은 나라 사람인 지도 교수의 꼼꼼한 가르침은 G에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덕분에 힘들기도 했다. 랩 미팅이 끝나면 G의 영혼은 탈탈 털렸다. G의 머리카락은 한 해가 다르게 듬성듬성 해졌고, 실험실 생활 3년 만에 G의 속 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이 힘든 토요 랩 미팅이었지만 남자는 “USE YOUR NOODLE. 머리 좀 쓰라"라는 교수의 지적을 듣고도 영어인 탓에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부족했나 보다 하고 툭 털어버렸다. 남자가 외모도, 성격도 직선적이고, 담담하고, 과감한 람보라면 G는 모든 면에서 진지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세 얼간이>의 배우 아미르 칸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한편, 그들의 실험실에 일본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일본 동료가 있었다. 실험실의 지도 교수를 비롯하여 인도 사람이 대부분인 실험실에서 넉살 좋게  어울리는 한국 남자를 쳐다보는 일본 동료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급기야 일본 동료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고, 남자가 실험한 데이터를 조사하며 모두 거짓이라고 보스에게 허위 보고를 했다. G 일본 동료의 주장을 모함이라고 절대적으로 불신했다. 누구보다 정직하게 실험을 하는 남자를 믿기에 말도  되는 소리라며 보스에게 남자의 억울함을 알리는데 힘을 실어주었다. 지도 교수도 남자를 신뢰했고 “I CAN PROTECT YOU.” 내가 너를 보호할  있다며 남자를 안심시켰다.


 낯선 땅에서 남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스스로를 믿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G의 사슴을 닮은 선한 눈을 보며 G를 믿고 싶어졌다. 정말로 남자가 곤경에 빠져 힘들어할 때 G는 도움의 손길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언젠가 그 은혜를 꼭 갚으리라 다짐했고 G를 보며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G는 엄격한 지도 교수의 채근으로 오로지 실험에만 매진한 덕에 그들의 논문은 차곡차곡 쌓였다. 지도 교수는 그들이 이만하면 충분히 독립할 수 있으니 “어서 실험실을 떠나라”라고 부드럽게 압박했다.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취업비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걱정하며 부지런히 이력서를 돌렸다. 남자는 뉴욕의 실험실에서 연락이 왔지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그곳은 배제해야만 했고, 원하는 곳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G는 미국이 아닌 끊임없이 자신의 고국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비슷한 시기에 남자는 한국으로, G는 싱가포르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서로 미국을 떠나며 어떤 모습이 되어 있든 계속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정글 같았던 미국 직장에서 상부상조했기에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이 없었다. 서로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았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사이에 현기증 나는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뒷목이 뻣뻣해지는 배신감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미국에서 그들은 가진 것은 없었지만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를 알아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믿어주는 친구이자, 서로의 일을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사이다. 둘이 있을 때 좋은 결과를 냈던 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공동연구는 계속되었다. 일에 대한 고민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면 복잡했던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G는 세미나에 참석하러 몇 차례 한국에 왔다. 친구의 나라에서 세미나가 열리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보다 살집도 붙고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밀어서인지 신수가 훤해진 G를 보며 빅가이가 되었다며 남자는 흐뭇해했고, 친구가 그의 나라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G는 기분이 좋고 그저 안심이 되었다.


 남자는 한국에 온 이후로 별을 자주 보지 않는다.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지만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풍성한 가족들이 있고, 말이 잘 통하고, 비자 걱정 없는 한국이 좋다. 간혹 별을 볼 때면 텍사스에서 홀로 외롭게 빛났던 별과 여전히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G가 떠오를 뿐이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남자는 깜박 잠들다 전화벨 소리에 이내 잠을 깼다. “헤이, 굿 애프터눈! 일은 잘 돼가?” G의 전화다. 남자의 연구실이 생긴 이후로 주말을 제외하고 G는 남자에게 거의 매일 국제전화를 한다. G는 무료 보이스톡을 사용해도 되지만 꼭 국제전화 카드를 사서 남자의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남자가 G를 처음 만난 지 18년이 지났다. 어느새 그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더디게 오르는 월급을 불평하고,익숙한 일 이야기를 짧게 주고받는다.


 언제까지 G는 국제전화 카드를 사서 남자에게 전화를 할까? 하긴 그때를 안다고 한들 그들의 우정이 뭐가 달라질까 싶다. 중간에 그칠 수도 있고, 다시 올 수도 있겠지.

 다만 두 남자가 나눈 우정은 그들의 마음속에 빛나는 별이 되어 일생동안 잊기 어려우리라.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남자는 살아보니까 조금은 알 것 같다.


⭐️

멀리 있어서 더 반갑고, 아련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친구 한 명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잊고 지냈을 뿐. 오늘 밤 소중한 기억을 잘 꺼내 보시길 바랍니다. 별 그램 친구들의 좋아요 기록보다 마음속 별처럼 빛나는 친구를 떠올리며 더욱 환한 미소를 짓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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