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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Mar 05. 2021

마음의 상자

成子

 생애 처음으로 만나게  일본인,  자꾸만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이름은 청쯔 成子이고 일본인 특유의 외모와 종종거리는 걸음걸이가 인상적인 그녀는 나와 같은  학생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이름 ‘성자 한글로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고 그녀를 ‘청쯔라는 중국어 발음 대신 종종 장난스럽게 ‘성자 불렀다.


 중국에 체류할 당시 중국의 수도 북경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 중 한국인 유학생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가 공부했던 학교의 우리 반 학생 숫자만 봐도 21명 중 한국인 18명, 일본인 1명 , 러시아인 1명, 영국인 1명이었다. 다수의 한국 학생들 틈에서도 한국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던 러시아, 영국 친구들과는 달리 일본 친구 성자는 늘 혼자였다. 밥도 혼자 먹고, 친구도 없이 겉돌았다. 나는 교실에서 섞이지 못하고 겉돌며 위축되어 있는 성자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같은 반 한국 친구들은 성자가 한국 친구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한국인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교내 인라인 동호회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같이 인라인 동호회에 가보자고 졸라봤지만 인라인 타기를 겁내 하거나 시큰둥해하며 다들 거부를 했다. 중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인라인 동호회에 가입만 해놓고 활동을 못하고 와서 아쉬움이 컸었는데 중국에서 인라인 동호회를 보니 반가움이 컸다. ‘혼자라도 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다 성자를 만났다. 낯을 가리는 그녀의 성격을 잊고 “오늘 혹시 시간 있으면 나랑 인라인 동호회 같이 가볼래?”물어보니 성자는 흔쾌히 같이 가자고 대답을 했고, 귀여운 덧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날 오후 나와 성자는 인라인 동호회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강당에 갔다.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중국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와 외국인 학생임을 확인하고 친절하게 가입절차를 안내해줬다. 회원 가입을 하고 인라인 동호회 친구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우리를 처음 안내해주었던 중국인 여학생이 인라인 스케이트가 준비되지 않은 나와 성자에게 다음날 오후에 천단공원 맞은편에 있는 红桥市场 홍치아오 시장에 같이 가서 인라인 스케이트 구매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나와 성자는 북경에 도착한 지 겨우 두 달 남짓 이어서 북경이 낯설고 중국어도 서툴렀던 탓에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성자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러 가고, 인라인 동호회 친구들과 여러 활동들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그동안 몰랐던 성자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행동에도 연신 고맙다고 하고, 사소한 실수도 늘 미안하다고 연발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예의 바르고 겸손해 보였다.


 인라인 동호회 활동 이외에 나와 성자는 교실에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성자는 교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수줍게 웃어주었다. 성자에 대한 나의 호감은 높아졌지만 같은 반 한국 친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을 긋는 성자의 행동에 대하여 한국 친구들은 오해가 쌓여갔다. 성자의 좋은 점을 말해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녀의 편에 서서 감싸주지는 않았다. 다수의 거부감을 무릎 쓰고 성자에 대한 호감을 드러낼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인라인에 관심이 많았던 나와는 달리 성자는 인라인 동호회 활동에 그다지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밤 9시~10시에 하는 인라인 기초 강습에 나왔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허우적거리며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학기 중 수업과 과제들로 바빠짐에 따라 인라인 동호회 활동도 뜸해졌고, 성자를 자주 보진 못했지만 인라인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중국 여학생과 잘 지내는 듯해 보여 내심 안심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미국에서 온 다른 반 학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다. 평소 같으면 다른 사람들과 있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왠일로 성자가 먼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처음 본 미국인 학생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친근감을 나타내는 성자가 낯설었다. 한 번도 교실에서 한국인 친구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와 애교를 보이는 성자를 보며 같은 반 한국 친구들의 말이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성자는 나에게 “미국 친구랑 친하니? 정말 좋겠다. 영어도 늘고, 중국어도 늘고 얼마나 좋으니!” 거듭 미국인이랑 친하게 지내면 좋다고 성자답지 않게 화색을 띄며 긴 수다를 늘어놓았다. 나는 미국인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서둘러 인사하고 성자에게 발끈하여 말했다.

 “넌 목적을 두고 사람을 만나니? 만약 네가 나한테 어떤 목적을 두고 사귀었다면 정말 실망이 크다!” 말 폭탄을 던지고 나는 기숙사로 화가 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왕 북경에 중국어를 배우러 왔는데 영어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크게 실망을 했을까 싶다.


 그 이후로 나는 교실에서 성자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성자는 혼자 조용히 수업 준비를 하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우린 가끔 니하오? 인사를 건네며 서로를 무심히 지나쳤다. 매서운 북경의 추위 탓에 가을에 샀던 인라인 스케이트에 몇 번 발을 집어넣지도 못하고 그 해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 봄에는 사스가 발생하여 급작스레 종강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성자가 수줍게 나에게 다가와 편지를 건넸다. 나는 어색하게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기숙사 방에 도착하여 그녀의 편지를 열어봤다.

“안녕?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웠어. 네가 인라인 동호회에 날 데려가 준 덕에 거기서 좋은 중국 친구를 사귀었고 알차게 중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나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네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

- 상자 -

마지막 줄에 내가 가르쳐준 그녀의 한글 이름이 크게 보였다. 성자라고 알려준 한글 이름을 기억하고 꾹꾹 눌러쓴 것이 귀여웠다. 상자로 잘못 쓴 글씨를 보니 웃음이 나오며 그동안 그녀에 대한 나의 오해가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녀의 편지를 받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나는 측은지심이 생겨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끝까지 챙겨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를 외면하여 그녀를 한동안 더 쓸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베푼 작은 호의를 잊지 않고 나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그녀의 어른스러운 마음을 생각해보니 나의 비겁함이 부끄러웠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상자라는 글자를 보면 나는 우정을 더 발전시키지 못한 그때의 나의 옹졸함이 생각이 난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내 마음의 상자에는 얼마만큼의 우정을 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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