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모순 / 양귀자
*결말이 포함되어 있는 리뷰입니다*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책의 초반을 읽었을 때는 그저 결혼 이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쌍둥이자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할,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고 있는 모순에 대해 말한다.
첫번째 모순_ 완전히 다른 삶
소설은 주인공 안진진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쌍둥이자매), 남동생, 아빠,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가장 큰 줄기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쌍둥이자매의 이야기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와 결혼한 엄마와 모든 것이 정확하여 심심하기까지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결혼한 이모. 한날 한시에 태어났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자매의 인생 자체도 모순이지만, 인생을 대하는 두 자매의 태도 역시 모순적이다.
무능력한데 폭력까지 일삼는 남편, 구치소를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안진진의 어머니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활기가 넘친다. 어머니의 인생은 매일이 풀어나가야할 숙제로 가득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살아야할 이유가 있어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이다.
반면 부유하게 살아가는 이모의 삶은 무기력하다. 여행을 가면 그곳이 어디든지 (자신의 기준에 따라) 꼭 세 장의 사진을 남기는 남편, 정각에 도착하는 열차와 같은 인생을 사는 남편과의 삶은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게다가 젊음을 바쳐 키워낸 자식들은 자기 살 길을 찾아 더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삶이지만 정작 이모는 삶을 사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는 단순히 겉으로 보여지는 가난과 부유함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가난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엄마와 부유함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모의 모순적인 삶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닐까.
두 번째 모순_ 과거가 잠식한 현재
주인공인 안진진의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와의 관계에서도 모순이 있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는 남자 나영규에게 안진진은 본인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남동생 등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나영규에게 안진진은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나영규가 살아가는 인생의 계획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고 느낄 뿐이었다.
김장우에게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나영규와의 관계에서 안진진이 수동적이었다면, 김장우와의 관계에서는 안진진이 더 적극적이었다. '사랑'을 느낀 상대였다. 그렇지만 김장우에게는 솔직하지 못했다. 김장우의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해줬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못했다.
결국 안진진은 나영규를 택했다. 이유를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면 첫째, 엄마의 삶이 아닌 이모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영규의 성격은 이모부와 많이 닮아 있다. 모든 것이 계획적이고 정확한 남자. 타인에 의해 한번도 정확히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 같은 아버지를 감내하며 살았던 엄마의 인생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모에게 엄마와는 다른 삶을 가져다준 이모부와 닮은 나영규를 선택했을 것이다. 둘째, 김장우를 대하며 발견한 자기 안에 '아버지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생긴 쇠창살문에 갇혀 탈출을 꿈꾼 아버지의 모습을 김장우와 만나며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김장우를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과 닮아 있어, 그 사랑의 결말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모순_인생
인생 전반에 흐르고 있는 모순을 소설 속 글귀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갚아야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생은 크고 작은 모순 속에서 그 모순과 싸우고, 때로는 그 모순을 받아들이고, 또 어떤 때는 내가 모순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모순>의 마지막 문장처럼.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