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오랜만에 여행을 앞두고, 여행지에서 틈날 때마다 읽을 책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여행을 주제로 한 에세이나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시집을 생각했는데, 결국 손에 남은 건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였다.
이 책은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7편의 단편에서는 집이라는 공간과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층위를 다뤘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장면들이라 읽는 내내 깊은 공감이 밀려오고,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라 읽고 나면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단편은 <숲속 작은 집>이었다.
<숲속 작은 집>은 장기간 타국에 머무르게 된 부부, 은주와 지호의 이야기다. 어느 날부터 숙소 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팁을 주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일들이다.
지호가 흐트러진 욕실용품을 하나하나 바로 세우며 말했다. 우리가 숙소를 더럽게 쓰는 것도 아니고 무례하거나 시끄럽게 군 적도 없는데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건 돈 문제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중요하지, 돈은.
나는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실은 제일 중요하지 뭐.
<숲속 작은 집>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건, 돈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태도다. 신혼 초 남편을 잃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키워낸 엄마 밑에서 자란 은주는 '돈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돈이 관계를 바꾸고, 사람의 성격과 감정을 흔들고, 때로는 위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그 힘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외국인을 자주 접하며 팁에 익숙해졌을 테고. 그러다 보면 못 받을 때 서운한 게 또 사람 마음으로, 그 사람 생활에 팁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지도 몰라.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려 애썼다. 그런데도 가슴 한쪽에선 왜 자꾸 차가운 감정이 이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나는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나눈 인사와 미소가, 눈빛과 호의가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그래서 팁을 건네는 일조차 오래 고민한다. 얼마가 적당할지, 봉투에 담아야 할지, 감사의 말을 덧붙일지, 온갖 선택의 갈래 앞에 멈춰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상하 관계,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팁을 주는 내가 당신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의 노동에 정당하게 고마움을 표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지호는 고민이 없다. 지갑에서 꺼낸 돈을 그대로 팁으로 건네고, 장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조차 같은 방식이다. 돈으로 인해 약자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의 특유의 가벼움이라 할 수 있겠다.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사람에게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지 모르는 지호에게 돈은 고민의 대상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항상 고민의 대상이 되는 복잡한 존재,
다른 어떤 이에게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매일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런 나에게 묻는 듯하다.
"당신에게 돈은 어떤 존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