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review)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늘 있었던 <자기 앞의 생>.
어떤 줄거리인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제목이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표지도 너무 예뻤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바로 첫 문장의 임팩트다. <이방인>, <파친코>,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자기 앞의 생>의 첫 문장도 그랬다.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 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핏 평범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되어 더 큰 여운이 남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다. 로자 아줌마는 창녀가 낳은 아이들을 맡아서 키운다. 모모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인데,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있다가 일곱 살 때쯤 알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로자 아줌마는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유태인이다. 새벽녘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모모에게 종종 나치의 친위대원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독일군들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 지하실에 몸 숨길 곳을 마련해 두는 나치의 피해자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으니까. 물론 나를 돌봐주는 대가로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긴 했지만. 로자 아줌마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삶의 상처가 있는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로자 아줌마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모모가 그녀를 위해 선택한 행동을 보여준다. 모모는 거동이 어려운 치매 환자가 된 로자 아줌마를 보호 시설로 보내지 않고, 지하실로 데리고 간다. 그것이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그녀가 가장 행복해할 것을 모모는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숨을 거둔 후에도 모모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군데군데 점차 푸르죽죽하게 변해가는 그녀의 얼굴 화장을 고쳐주었다. 나는 그녀 곁의 매트에서 잠을 잤다. 바깥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밖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모모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을 함께 해 주는 것. 그녀가 좋아하는 옷을 입히고 좋아하는 향수를 준비하고, 또 그녀의 곁에 있어주는 것. 의지할 곳이라고는 서로뿐이었던 두 사람의 마지막은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창녀의 아들, 아랍인, 미성년자인 모모가 살아가야 할 생은 지금까지도 가혹했고, 앞으로도 가혹할 테지만 ‘사랑’이 있기에 모모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중략)……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