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스테이크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코칭의 대전제 중 하나는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긍정적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때 사실과 감정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를 듣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비폭력대화에서 '욕구'와 같은 개념이랄까.
나는 '의도 경청'의 중요성을 이미 한 번 체험한 바 있다. 예전에 선배 코치님을 상대로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육아휴직에 단축근무까지 몇 년 했는데, 여전히 저는 아이에게 어려운 엄마인 것 같아요. 아무리 워킹맘이라지만 아이에게 친밀감도 주지 못하고 한심하네요. ㅠ.ㅠ" 하고 일장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그분께서 하신 한 마디.
아이와 친밀해지고 싶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치 심봉사가 개안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구나! 나는 아이와 친밀해지고 싶구나!
그 전에는 '못하는 나, 한심한 나'에만 온통 생각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내 의도를 깨닫고 나니 '어떻게 하면 친밀해질 수 있을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동했고, 더 이상 나를 탓하는 일도 없었다. 나를 수용하고, 다음 단계로 발전적 사고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어제, 타인의 의도를 경청하는 것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남편, 아이와 함께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오는 길에 예쁜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띄길래 빵을 좀 살까 하고 차를 세웠다.
막상 실내로 들어가 보니 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 풍경이 너무 좋아서 잠시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저녁 시간이었고 메뉴판을 훑어보니 식사 거리도 팔고 있길래, 점심을 배불리 먹어서 그닥 시장하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파스타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싶어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나는 가장 전망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남편에게 주문을 맡긴 다음 매의 눈을 부릅뜨고 카페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제일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한참 뒤에 남편이 파스타 대신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오는 게 아닌가! 메뉴판을 다시 확인하니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였다.
'분명히 파스타 먹기로 하지 않았나? 점심에 고기반찬 먹은 게 아직 소화도 안 되었는데 웬 스테이크야!'
'스테이크는 전문점 가서 먹어야지 이런 변두리 베이커리 카페에서, 그것도 이렇게 비싼 걸 말이야! 너무 비합리적인 소비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들로 짜증이 나서 남편에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 스테이크 안 먹고 싶은데."라고 불쑥 말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의도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코칭교육에서 배운 것에 의하면 이렇게 (파스타를 주문하라는)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전문점도 아닌 곳에서 비싼 돈을 내는) 비합리적인 행동에도 분명 긍정적 의도가 있으렷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아내를 위한 스테이크'였다. 남편도 아이도 먹는 데 관심이 없고, 스테이크 같은 음식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둘 다 같은 값이라면 편의점이나 세계과자할인점에서 신기하고 재미난 간식을 잔뜩 사는 편을 택한다.
반면 나는 맛집 탐방과 카페 투어가 취미이다. 인테리어가 예쁘거나 풍경이 좋은 가게에 가서 그럴듯하게 차려 나온 음식을 눈으로 감상하고 맛보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아름다운 한강 전망이 눈에 띄자 '아내가 이런 데서 비싼(?) 음식 먹는 걸 좋아하지'라고 생각하고 파스타 대신 스테이크를 주문한 것이다. 오직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실 이것은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남편은 스테이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오면서 나에게 자랑스럽게 "당신을 위한 스테이크야."라고 분명히 말했다. 남편 입에서 나온 그 문장은 내 귓가에 당도하기는 했으나, 내가 스스로의 패러다임에 빠져 있는 바람에 뇌까지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엉뚱하게 혼자서 '남편의 의도가 뭘까' 하고 추측한 것이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것인데, 나는 남편에게 "점심 먹은 것이 아직 안 꺼졌으니까 간단히 먹고 가자. 파스타를 주문해 줘."라고 분명히 말하지도 않았다. 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다음 남편도 같은 생각이겠거니 하고 "파스타 주문할 거지?"라고만 얘기했다. 내 패러다임 속에 빠져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자 갑자기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스테이크 접시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준비한 스테이크라니!
그리고 한 입 먹었는데 '변두리 베이커리 카페'라고 폄하한 것이 무색할 만큼 맛있었다. 미안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