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by 밍이


토요일 오후.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간 틈에 사무실에 나와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던 중, 마찬가지로 출근해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박 이일 여행 가잔다.


여행? 갑자기? 약간 놀랐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남편은 매우 즉흥적인 성격이라서 우리는 계획도 없이 불쑥 떠나게 되는 일이 잦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우리 차 트렁크에는 아예 수영복이니 캠핑의자니 하는 것들이 상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한 무더기의 서류더미를 눈으로 슬쩍 훑은 다음, 사무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을 햇빛이 영롱하구나. 일박 이일로 여행을 다녀오면 일요일 저녁부터는 미친 듯이 달려야겠지만 뭐... 이 날씨가 언제까지 가겠어. 휴대폰에 대고 "좋아!"라고 말하자 남편이 퇴근길에 차로 사무실 앞까지 데리러 왔다.


집에 도착했는데 엉망인 꼴을 보더니 남편이 가기 전에 청소 좀 하잔다. 어째 예감이 안 좋은 걸. 그냥 출발하자고 말해보았지만 어차피 지금은 차가 막힌다면서 기각당했다. 남편이 주섬주섬 정리를 시작하는데 나도 별도리 없어 같이 거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얼른 출발해야 가서 저녁을 먹을 텐데. 가는 길에 숙소 검색도 해야 하는데.' 온통 여행을 위한 계획뿐.


이런 내 맘도 모르고 남편은 어느새 관심사가 여행이 아니라 청소가 되었는지 온 힘을 다해 본격적인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다 끝내고 나니 저녁 8시. 배가 고프다며 저녁 배달시켜 먹고 떠나자더니, 밥을 다 먹고 나서는 피로한 기색을 보여서 결국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정해져 버렸다.


나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기껏 청소나 하려고 급한 일 미루고 집에 들어온 줄 알아! 매사 이런 식이지. 도대체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다니까. 맨날 즉흥적으로 이리 튀고 저리 튀니 맞출 수가 있어야지. 불만이 한가득이었지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라 그냥 넘길 수밖에.



다음 날 오전, 최근에 조개 캐기에 꽂힌 아이를 위해 갯벌로 차를 몰았다. 그날따라 여름날처럼 더웠지만 신이 난 아이와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로 철벅철벅 들어가더니 조개를 캐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하다가 잠깐 쉴 겸 화장실에 갔다 오니 남편과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 찾다가 발견했는데 둘이 사람 없는 외딴곳으로 이동해서 서로 진흙을 던지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의 여벌 옷은 가져왔지만 남편 건 안 챙겼는데?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옷을 다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와는 달리 그런 생각 1도 없어 보이는 아이와 남편은 신나게 깔깔거리며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다. 내가 봐도 즐거워 보였다.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렇게 앞 뒤 가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니! 문득 호기심이 일어 다른 아빠들이 어떻게 놀아주는지 관찰해보니, 세상 진지한 얼굴로 조개 캐기에 몰두하거나, 가끔은 아이에게 "조개는 그렇게 캐는 게 아니고..."하고 훈수를 두거나 할 뿐, 아이를 데리고 온 그 수많은 남자들 중에 진흙싸움을 해 주는 아빠는 내 남편밖에 없었다. 대단하구나. 내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이라고 불만을 품었던 그 성격은 반면 '자유롭고 유연성 있는' 성격이기도 하구나.


코칭 기술 중 '인정' 항목에서는 사람의 성격이 동전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거기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롭게 살릴 수 있다. 물론 나쁜 방향으로 작용할 땐 적절히 내 감정과 욕구를 상대에게 전달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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