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인정의 힘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by 밍이


얼마 전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의 회원분이 질문을 하셨다. 사연인즉슨 일하고 밤늦게 퇴근했는데도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놀아주고 싶어서 같이 보드게임을 하다가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서로 이기고 싶어 하는 바람에 다툼이 있었단다. 결국 그분은 화를 내었고, 모두 마음이 상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에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궁금하시다는 것.


그 질문에 대해 나는 당시의 상황, 그때 그분이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늦은 시간 퇴근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위해 애쓰셨군요. 정말 사랑이 넘치는 엄마이십니다. OO님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보기를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아서 속이 많이 상하시겠어요. 그 끝에 화를 내셨으니 자책감이 드셨을 수도 있겠지요.


일단 '애초에 보드게임을 하지 말자고 할 걸.'은 괜찮은 결론 같은데요? 엄마들이 평소보다 더 쉽게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피곤할 때나 초조할 때(시간에 쫓길 때)인데, 야근하고 와서 애 재우기 전 9시에 부루마블을 시작하는 건 피곤함 + 초조함이 가중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빨리 끝낼 수 있는 '스플랜더'를 하고 싶어 할 것으로 예상하셨지만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탓에 둘째가 부루마블을 가져왔고, OO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걸 시작하신 거죠? 정말 성실한 분이십니다. 아이들은 은연중에 그런 OO님의 성실함(입 밖에 꺼낸 말은 지키는)을 배울 거예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평소에 아이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많이 알아두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중에서 상황에 맞는 것, 이번 경우에는 자기 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고, 많이 에너지가 들지 않는 것을 선택하면 되겠지요. 저희 애는 인형 칼싸움, 블록이나 클레이 만들기, 종이접기, 웃긴 농담, 자기가 좋아하는 책 함께 읽기, 간지럼 등을 좋아하는데 제 에너지 상태에 따라서 적절히 선택합니다. 잘 모르시면 아이에게 엄마가 뭘 해 줄 때 좋은지 물어봐도 좋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늘 OO님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신화에 빠져 있고, 특히 모범생으로 살면서 사회적 이득을 많이 본 사람들은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한데 사실은 노력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도 많지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OO님이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OO님이 최적의 방법을 선택해서 시도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상황, 상태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그러니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힘든 걸 참고 놀아주었는데 잘 되지 않았을 때 '오늘은 잘 안 되었구나. 아쉽네. 그래도 노력한 내가 대견하다.' 정도로 넘어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자기 인정, 자기 격려를 많이 해 주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그리고 저는 OO님 아이들이 지극히 건강하고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엄마가 얼마나 피곤한지,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밤늦게 들어온 엄마 얼굴이 반갑고, 같이 보드게임해준다니 신나고, 시작했으니 이기고 싶고... 그런 거죠. 특히 둘째는 완전 이기고 있었는데 첫째가 속상해하니까 엄마가 나한테 행운 카드를 써서 못 이기게 되었잖아요. '이길 것을 기대했는데 엄마가 첫째 편을 들어서 못 이겼어' 충분히 속상할 상황이지요.


여기서 만약 '아아... 아쉽게 되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밤늦게 들어와 우리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니 참아볼까'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어른의 사정을 헤아려 배려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고, 그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부담이나 짐을 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마무리로 서로 속상해하면서 안고 잤다니 참 대단하신데요. 의사소통도 되고, 서로 애정도 충만한 느낌입니다."


board.jpg https://images.app.goo.gl/ro5q8RSDsvHM449W6


이 답변을 받고 그분은 매우 감동하셨다. 왜일까? 필요한 조언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먼저 그분의 속상한 마음을 하나하나 읽어드렸다. 그리고 그분이 애썼던 순간들을 인정했다. 그분은 공감과 인정을 받음으로써 스스로 '내가 얼마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힘이 났다.


내가 한 말은 공치사가 아니다. 애써서 좋은 면만 보고 포장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그분 속에 있는 빛나는 것을 거. 울. 처. 럼. 반사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이 원래 알던 그것, '타인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코칭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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