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이 내게 남긴 부작용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지난 글에서 학교교육의 장점을 설파했으니(코칭의 매력과 학교교육) 이번에는 단점을 말해보려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학교교육이 아니라 '성적으로 줄 세워서 대학 가는 입시제도'의 부작용이지만. 요새 학교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시험이 없다고 들었는데, 우리 때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험이 있었고, 늘 반에서 몇 등인지 전교에서 몇 등인지 의식하며 지냈으니 학교교육의 부작용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장 큰 부작용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시피 상대평가 시스템의 맹점이다. 시험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아이는 시험을 계기로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현재를 진단하고, 공부 전략을 짜서 실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상대 평가된 자신의 지위를 계속 확인하게 되면, 그리고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질책하는 어른들의 반응을 계속 겪다 보면, 아이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전체 중 몇 등인지, 누구보다 잘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기게 된다. 아이 때의 자존감이란 어른들의 반응을 거울삼아 형성되는 것이기에.
이는 대학입시가 끝나도 은연중에 머릿속에 남아서, 취업, 결혼, 출산, 승진 등 인생의 과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이것을 진정 원하는가, 스스로 원하는 만큼 해내고 있는가'를 생각할 겨를 없이 '남들과 비교해서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인지'에 전전긍긍하면서 매달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인생 후반부에 와서 공허감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공허감의 원인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삶의 전반기 동안 이루어야 하는 것들에 시간을 바치느라,
한 번도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위대한 멈춤> 중
그럼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시험과 평가가 없어졌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아니다. 요새는 학원이 그 역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는 교육하는 곳, 학원은 이를 보조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점점 입시가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어느 틈에 학교에서는 평가를 받고, 배우는 건 학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숫제 대형 메이저 학원들이 평가의 기능까지 도맡고 있다.
대치동 빅 3이라는 영어학원, 잘하는 아이들만 뽑아간다는 모 수학학원에 합격하는지 아닌지가 아이의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그런 유명한 학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학원은 아이가 입학하기 전, 그리고 입학한 후에도 끊임없는 테스트를 거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무슨 학원 무슨 반인지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비교 평가하게 되고, 테스트에 계속 낙오할 경우 어린 나이부터 열패감을 체득하게 된다.
아이의 영어학원을 알아볼 때의 일이다. 아이는 스피킹은 좋아하지만 리딩이나 라이팅은 질색을 하기에 스피킹 위주의 학원을 알아보았다. 그런 학원에 들어가면 리딩과 라이팅 때문에 괜히 고생할 일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피킹을 실컷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피킹이 강세라는 학원에 전화상담을 요청했는데 면담 내용이 당황스러웠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학원은 스피킹이 강점이라, 이미 스피킹을 잘하는 아이들이 들어옵니다'라는 것이다.
이미 잘하는 아이들을 뽑으면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뭐지? 언제부터 학원이 교육기관이 아니라 평가기관이 되었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런 학원들을 뺑뺑이 돌면서 어린 나이 때부터 끊임없이 옆 친구와 자기의 위치를 비교할 아이들이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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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부작용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바로 '평가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을 잡기 위한 자료를 얻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결과로 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것이다.
결국 내 아이는 가장 공부 압박이 적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원을 골라 보냈는데, 거기에서마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레벨테스트를 해서 반편성을 새로 하는 제도가 있었다. 스피킹을 좋아하는 아이는 수업시간에 친구들보다 유창하게 말하면서 영어에 대한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첫 번째 레벨테스트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본인보다 못한)가 월반을 하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때 매우 고민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경쟁과 시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학원을 그만두게 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이는 계속 다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소망아, 친구가 더 높은 반에 올라가서 속상하니? 스스로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아서 자신이 없어졌어? 엄마가 보기에는 소망이가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하는 점은 큰 장점인 거 같아. 그런데 읽고 쓰는 건 아직 서툴러. 그건 그냥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연습하면 되는 거야.
너는 지금 선택할 수 있어. 지금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테스트 때 더 높은 반에 도전할 수도 있고, 그냥 지금 반에 즐겁게 머물러 있을 수도 있어.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둘 다 괜찮은 선택이야."
나는 아이에게 다음에는 열심해 해서 월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너는 무조건 잘 한다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객관적인 상태를 말해주고, 너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주고, 어떻게 할지는 너의 선택이라고 얘기했다. 언젠가 때가 오면 전력으로 달려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말만 이렇게 하고 속으로는 '아니 이깟 시험 하나 못 봐서 월반을 못하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긴 했다;; 들인 돈도 아깝고, 내 아이는 뭐가 모자라나 싶고. 그런데 매번 테스트를 할 때마다 저렇게 말해주었더니 이제 나에게도 확신이 든다. 학원과 시험은 단지 보조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엄마가 그렇게 믿고 흔들리지 않으면, 아이는 평온을 지킬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면서 맞닥뜨릴 수많은 시험과 평가에 휘둘리고, 자존감이 다치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