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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un 16. 2022

나의 해방일지 - 못다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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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먼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인 '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기정은 말을 함부로 합니다.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두 번이나 불쾌하게 할 만큼 거침이 없고, 태훈에게도 '좋아한다, 다음에 같이 자자'라는 말을 다이렉트로 쏟아내어 당황하게 만듭니다. 기정에게 말은 욕구를 분출하는 통로이자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 주는 수단입니다. 기정은 말이 급한 만큼 행동도 빨리 나갑니다. 이것은 끝까지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다만 기정의 말은 겉과 속이 같습니다.


창희는 기정처럼 기본적으로 말을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정대리의 수다에 질려서 '다말증 환자'라고 욕하면서도 자기 자신도 그에 못지않게 말을 많이 합니다. 나중에 철든 창희는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귀한 것을 속에 담아둘 줄 아는 큰 그릇, 산 같은 사람이 되지요.


미정에게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돈 떼어먹고 적반하장 호통치는 말, 동호회 가입을 강제하면서 갱생시키려는 말, '이목구비 하나하나 따져보면 예쁘지만 매력이 없다'라고 품평하는 말, 말, 말... 잘난척하며 내뱉는 그 말들에 미정은 상처받습니다.


미정 자신의 말은 어떨까요? 미정은 사람들 속에서 말을 잘 못합니다. 1회 초반에 미정이 억지로 동호회에 따라가게 된 장면을 잘 보세요. 처음에 미정은 지루하다거나 끼기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아요. 어떻게 끼어야 할지 몰라서 쭈뼛거립니다. 미정은 가족들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구 씨가 떠났을 때에도 시장통을 걸어가면서 '개를 잃어버렸다'라고 구슬프게 울 지언정 가족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식장 외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단서는 이 장면에 있습니다. 미정이 전 남자 친구 돈을 대신 갚았을 때 구 씨는 전남친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주면 받아다주겠다고 하죠. 미정은 구 씨에게 왜 자꾸 바닥을 보라고 하냐면서 '얼굴 붉히는 것도 힘든 사람이 있다'라고 화를 내자 구 씨가 '내 앞에서는 잘만 붉히네'라고 대답했을 때 미정은 "넌 날 좋아하니까."라고 당돌하게 말합니다.


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 사이에서도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여진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현아의 말대로 미정은 '우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 앞에서는 미정도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 씨와 있을 때에는 나중에 구 씨가 "이제 아무 말이나 막 하는구나."라고 할 정도로 미정은 자기 자신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설렘 포인트가, 구 씨가 라면을 차려주면서 "먹어... 손 떨던데."라고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미정은 처음부터 구 씨한테는 우편물을 대신 받아달라, 받은 우편물을 여기 두겠다, 나를 추앙해라 등등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것과 달리 당돌하게 말해요. 그 이유는 그때부터 구 씨가 미정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정에게는 구 씨가 '아무나'였기 때문입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익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수더분한 척할 필요가 없었죠.


그 뒤에 구 씨와 추앙 관계가 되고, 구 씨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느끼면서도 이 순간까지 미정은 백 프로 확신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그래서 당돌하게 "넌 나를 좋아하니까."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는데, 구 씨는 그것을 눈치채고 라면 추앙을 하면서 안심시켜 준 것이죠. 그 뒤 미정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물."이라고 말합니다. 편안하고 안심되니까요. 저까지 안도감을 느꼈어요.


그 뒤에 구 씨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합니다. 미정의 계약직 회사 동료도 비슷한 말을 했죠. "언니가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는 게 언니의 불행이에요." 저는 이 메시지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라고 느꼈어요. 우리가 얼마나 귀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인지 알라고, 그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게 우리의 불행이라고요.)


또한 미정은 예수님을 표상하기에, 그 말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전에 말씀드렸죠. 작가는 현아를 사용해서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시키고, 미정을 사용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말합니다.


-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 화를 내서 한 번도 나아진 적이 없어

- 그래서 내가 힘이 없는 거야.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존재로 나를 세워놨으니까...

-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대(용서)해

- 내가 왜 그러는지 아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 문장은 내적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매우 공감이 가는 문장일 거예요. 실제로는 아는 게 100프로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왜 그러는지 아는 것이 7, 80프로는 차지하니까요. 기정이 2유형, 현아가 3유형인데, 사실 본인들은 모릅니다(현아는 살짝 아는 것 같기도 하고요).


구 씨에게 말은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구 씨는 남의 말을 듣기도 싫고, 대답할 말을 찾는 것도 싫죠. 수박 겉핥기 식의 대화를 정성스럽게 하는, 그래서 결국은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여자들의 대화도 너무 싫어합니다. 이에 관해서 어느 유튜브의 흥미로운 해석을 보았는데요. '구 씨가 그냥 조폭이었으면 말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호빠 출신이라서 끊임없이 남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상당히 동감합니다. 구 씨는 밤의 세계로 돌아가서도 시끄러운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 구 씨가 미정을 만나고,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의 말에 반응하게 되죠. '너만 만나면 생각지도 않은 말이 막 튀어나온다'라고 하면서 신기해합니다. 미정과 구 씨는 서로의 앞에서는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제호는 말이 없습니다. 그는 구 씨와 일하면서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호흡이 척척 맞죠. 그러면서 제호는 구 씨가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일하러 나올 정도로 성실한 것, 아침 9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일찍 일을 시작하는 제호에게 맞춰 7시에 올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배려심이 있는 것,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는데도 마치 허락을 구하듯이 "막내따님 전화번호 좀..."이라고 말할 정도로 반듯한 것을 알아봅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사실 우리가 요새 대화라고 부르는 것은 대체로 '네 얘기 한 번 들어줬으니 내 얘기 한 번 한다'는 식의 독백의 교류 아닙니까? 끊임없이 떠들어대도 상대방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 속에서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소리에 불과한 말들이 많지요.


그럼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작가는 나쁜 말의 다양한 모습들을 비춰주지만 따라야 할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성경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구 씨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볼까요? (추앙커플의 주체는 미정이라서 구 씨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던 것 같아 아쉽네요.)


미정과 알콩달콩 지내다가 우연히 백사장을 만난 날, 구 씨의 옛 여자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랑했지만 결국 지겨워져 버린 그녀. 하지만 구 씨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투신자살하는 사람 얘기를 한 것은 상담을 권한 것이었지 죽으라고 한 건 아니었지요. 그녀가 죽고 나서 구 씨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알콜중독이 심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요. 그래서 백사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텅 빈 눈빛을 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10킬로를 걸어오죠.


하지만 백사장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위악'을 가장합니다. 걔가 얼마나 지겨웠는 줄 알냐고 막말을 해요. 미정에게 그녀 얘기를 할 때에도 '죽으라고 한 얘기'라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하죠. 미정과 헤어져서 서울로 돌아갈 때도 슬픈 얼굴을 숨기고 단호하게 대합니다.


왜일까요? 일단 그가 속한 세계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곳입니다. 가장 강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는 오랫동안 비정함을 연기해왔을 거예요. 위악은 그의 얼굴에 붙어있는 가면 같은 것이지요. 너무나 익숙해서 한 몸이 되어 버린 (백사장과 같이 있을 때 그의 표정은 자연스럽지 않아요). 그는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증오 외에 '죄책감'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호빠 선수 2주 만에 마담 되고, 1년 만에 사장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밟고 올라갔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위악을 연기하고 사람들의 미움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벌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이런 놈이야... 자조하는 느낌입니다.


백사장을 만나고 나서 미정을 보는 구 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에게 인생은 '좋다가도 바로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이 생기면 잃을까 봐 겁이 나고(이것은 조경선이 유림이를 두고 '너무 소중한 게 생겨서 두렵다'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조경선은 잃어버린 적이 없지요), 결국은 잃어버린 다음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싶은 것이죠. 아마도 뭔가 얻었다고 생각하면 바로 잃어버리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빼앗기고, 믿었는데 배신당하고 했던 경험이 반복되었겠죠. 그래서 행복하면 그 이상으로 불행해질까 봐 겁나서, 불행을 잘게 쪼개서 맞고 싶어합니다.


미정과 알콩달콩 지내고 있던 차에 백사장을 만나니 '그럼 그렇지...' 싶었을 거예요. 미정과 행복하면 할수록 그것을 잃는다고 생각했을 때 두려움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미정에게 옛 여자 얘기를 하지요. 더 행복해지기 전에, 그래서 더 큰 불행이 찾아오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 씨는 '그만두자'라고 하지 않아요. "그만하라면 그만하고."라고 말하면서 선택을 미정에게 유보합니다. 나중에 헤어질 때 단호하게 먼저 정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불행이 두려워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 외에 다른 마음이 더 있죠. 자기를 붙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옛 여자 얘기를 하면서 '나는 이런 놈이야'라고 말해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역시나 미정은 그것을 알아봅니다. 옛 여자 죽은 얘기를 들으면 보통의 여자는 옛 여자를 죽게 했다는 고백이 두렵거나, 옛 여자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서운해하겠지만, 미정은 "들개한테 팔뚝 물어뜯길 각오 하는 놈이 그 팔로 여자 안는 건 힘들어?"라고 말해요. 구 씨가 행복한 게 두려워서 도망치려는 걸 알아봅니다. 왜냐면 구 씨는 미정에게 '거칠고 투명한' 사람이거든요(그러므로 이건 여혐 코드가 아닙니다. 다른 여자들은 구 씨를 모르고, 미정은 아는 것이죠).


미정은 구 씨에게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그러니까 더 가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구 씨는 구원받은 느낌이었을 거예요. 이런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괜찮다고 하기 때문이죠. 옛 여자가 싸울 때 "너란 인간은..."이라고 말하고, 구 씨는 "나란 인간 나만 알면 돼. 너까지 그럴 거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대조적이에요. 그래서 (속으로) 씐 난 구 씨는 산포싱크대 트럭을 몰고 백사장을 찾아가 한 번 눌러준 다음 그 길로 미정을 태우고 만두집에 가서 쏘 스위트 한 얼굴을 하죠. ^^


구 씨에 대한 연출 중 마음에 드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어둠 속에 있는 구 씨에게 빛이 비치는 연출입니다. 비 오는 밤에 미정이가 구 씨한테 달려갔을 때 구 씨의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 있고 미정이 비춘 동그란 랜턴 불빛 부분만 드러나고요. 나중에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을 때 커튼 사이로 비치는 빛이 길고 가늘게 구 씨의 얼굴을 비추죠.


빛이 의미하는 게 구원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요. 저는 비 오는 날 씬에서 불빛 속에 드러난 구 씨의 표정이 인상적이었어요. 그전까지 구 씨는 만사 귀찮고 의욕 없는 상태여서 얼굴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작고 동그란 랜턴 빛 아래에서 구 씨의, 마치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적인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심경의 변화를 예고하죠. 다음 날 멀리뛰기로 도약합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빛은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지성소와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 뒤에 숨어서만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영원한 대속을 이루신 다음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는 그 휘장이 찢어집니다. 커튼의 불빛은 그 휘장 사이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호빠에서 돈 떼어먹고 잠수 탄 여자 손님과 대면하는 장면이었어요. 구 씨가 소리치자 여자 손님은 구 씨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덜덜 떠는데, 그냥 채권자와 채무자, 조폭과 일반인이라기보다는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호랑이와 작은 포유류가 대면하는 느낌이었어요. 구 씨가 속한 곳이 짐승의 세계임을 나타내 주는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죄는 짐승의 죄와 악마의 죄로 구분할 수 있거든요. 대부분 둘이 섞여있지만. 구 씨가 속한 곳은 탐욕과 폭력, 성적인 죄가 난무하는 동물적인 곳이죠).




결말에서 미정이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미정이 자기부정-타인부정의 4 유형에서 자기 긍정-타인 긍정의 1유형으로 변화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가 예전에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시리즈에서 내적 작동모델에 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어린 시절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부정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내적 작동모델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미정이에게 그 내적 작동모델의 수정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핵심적인 증거는 미정의 어린 시절 일기에 있어요. 미정은 어린 시절 일기를 보고 '나는 있으나 없으나 한 그저 그런 애인 줄 알았는데 엄청 뜨거웠더라.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고...'라고 말합니다. 이게 왜 증거가 되는지 말씀드리기 전에 흥미로운 질문 하나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애 최초의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아래 빈칸을 채워보세요.


(가장 생생한 그 장면에서) 나는 (        )을 느꼈다.

왜냐하면 (        ).

나는 (        ).

다른 사람들은 (        ).

세상은 (         ).

그러므로 나는 (        ).

그렇지 않으면 나는 (         ).


생애 최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 생각들이 현재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은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의 주된 과업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구고, 세상은 어떤 곳인지 탐색하는 것인데요.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계속 좋은 경험만 하거나 계속 안 좋은 경험만 하게 되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 모순된 경험(내가 귀하게 대접받을 때도 있고, 무신경하게 방치되어 있을 때도 있고) 속에서 아이가 일정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면, 자기 세계관에 일치하는 경험만 기억하게 되고 나머지는 잊혀집니다.


미정은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나란 애는 그저 그런 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세계관이 점점 바뀌면서 사실은 '뜨거웠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상담이나 코칭에서는 내담자가 과거의 기억과 그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할 때 '정말 그랬는지' 물으면서 왜곡을 알아차리도록 돕기도 합니다).


쓰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번 편도 역시 저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그 여운에 잠겨 리뷰를 하는 동안 참 행복했어요. 좋은 작품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추앙의 의미로 이 세 편의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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