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 붐이 불었다. 과 동기들도 여럿 다녀왔다. 배낭여행을 넘어서서 어학연수 가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고3 때 집이 망하고 대학 시절 내내 과외 알바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던 상황이었다. 비교적 고액 과외를 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성적을 확실히 올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학 때 바짝 달려야 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방학 때 유럽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거의 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여행 그 자체보다도, 생계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그저 자기 욕망만 좇아서 살면 되는 그 상황을 더 부러워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 팔자 좋은 해외여행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뒤 허리디스크에 걸려서 장시간 앉아있지 못하게 되면서 그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하지만 내가 그어둔 한계를 하나님은 가뿐히 넘으셨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따라 하루하루 살아갔을 뿐인데, 어느새 돌아보니 많은 곳을 여행한 뒤였다. 그중 몇몇은 돈과 시간이 있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경험들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허락하신, 나를 위한 맞춤 여행.
그리고 작년에 미국에 있을 때 옐로스톤 여행 중 그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 서서 갑자기, 선풍기 앞에서 고2 학생을 가르치면서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동기들을 부러워했던 대학 3학년 여름이 생각났다. 그 수많은 동기들 중 이런 풍경을 만나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은혜란 이런 것이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고,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 어느 날 갑자기 서 있게 되는 것.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이가 나를 위한 때와 장소를 준비하여 인도하시는 기쁨.
옐로스톤에서 솔트레이크 시티로 돌아오는 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풍경들이 펼쳐졌다. 남편과 아이는 잠들고, 주위에 차도 거의 없는 그 길을 나 혼자 운전해 가면서 그 거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보고 있자니, 마치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대한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지으시고, 그것을 내 눈앞에 펼치시고, 내가 그것을 즐기고 감동받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는구나. 우리가 왜 예배자로 태어났는지 알겠다. 이 놀라운 선물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뿐.
그 와중에 살짝 불손한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역시 나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했구나. 이 세상의 주인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구나. 이것은 죄의 결과일 것이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싶어 하는,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그 원죄. 나는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