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문제로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지방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복귀할 무렵,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나는 남편과 상의해서 소위 '숲세권'으로 불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산 좋고, 물 좋고, 학원 없는 곳에서 아이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면서 행복한 정서를 갖게 해 주고 싶었다.
마침 당첨된 유치원도 한글이니 영어니 가르치는 다른 원들과는 다르게 '학습은 일절 시키지 않는다'는 철학이 있는 곳이었기에 내 뜻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유치원 엄마들과 공동육아모임을 결성해서 매일 하원 후 근처 숲으로, 텃밭으로, 개천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놀았다. 아이가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하지만 내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 자체는 좋아했으나, 자연친화적인 환경에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옷에 흙이 묻는 것을 싫어하고, 꽃이나 벌레는 질색했다. 그리고 가끔씩 만나는 다른 유치원 친구들이 한글을 읽고 쓰거나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쟤는 똑똑하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유명한 사건이 터졌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자고 말하며 다니던 유명 강사가 자기 아이는 대치동 학원을 보내 특목고에 합격시킨 일이었다. 배신감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 이게 아니었어.
'아이를 놀리는 엄마'는 그만두기로 맘먹고 뒤늦게 학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어유치원 입학설명회는 신청하기도 까다로웠고, 사고력 수학학원 교재는 어른인 내가 봐도 어려웠지만, 어쨌든 남들이 다 시킨다니까 아이를 밀어 넣었다. 주말에 학원 라이딩을 뛰면서 나도 이제 '시키는 엄마'의 대열에 들어갔구나 슬쩍 한숨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이게 대세니까 맞는 길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예상과 다르게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가기 싫어하면서도 꾸역꾸역 일 년을 채운 영어유치원 졸업식 날 아이는 '하루도 즐겁지 않았다'라고 말하여 내 심장을 서늘하게 했고, 사고력 수학학원은 결국 중도에 그만두었다.
나는 놀리는 엄마도, 시키는 엄마도 모두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내 아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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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놀릴 때, 나는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나의 교만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라. 깨어있는 사람이야. 그러면서 사교육에 목매는 엄마들을 은근히 우습게 여겼다. 내 자식은 그런 거 안 시켜도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그래서 아이가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는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내 생각에 좋은 방식대로 아이를 키웠다.
사교육을 시키기로 마음먹고는, 아이가 배울 마음이 되어 있는지, 뭘 배우고 싶어 하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갖가지 정보를 다 캐고 다녔다. 늘상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상위 일프로만 올 것 같은 카페를 비롯한 각종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요즘의 흐름과 대세를 파악하고 스케줄을 짜느라 정작 아이와는 눈 한 번 맞출 여유도 없었다.
아이가 원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다정한 눈맞춤과 미소 한 번이었는데. 자기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웃어주는 시간들, 불투명한 먼 미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불안함이 아니라 아이의 현재에 온전히 집중해 주는 편안함이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만 쳐다보니 조금씩 알게 되더라. 내 아이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수험생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명언은 여기에도 해당된다. 언제, 무엇을 시킬지 말지는 '아이 안에 답이 있다'.
내 아이보다 어린 자녀를 둔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나요?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미리 떼야 하나요? 학습지 시켜야 하나요?
그 답은 이미 당신 아이가 가지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달려야 한다'는 한 편의 소리와, '미취학 아이에게 학습은 독'이라는 반대편의 소리 모두에서 거리를 두고, 아이가 이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적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당장은 싫다 해도 막상 시키면 즐거워할 것인지는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그럼 아이에게 물어보면 된다. 다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해 봤는데 싫다 하면 왜 싫은지 물어보고, 계속할지 말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 주는 것과 아이에게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별개이므로 결국 최종 결정은 부모인 당신이 하게 되겠지만,그 과정을 아이와 함께 한다면, 아이를 내가 이끌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와 동등한 인격으로대우한다면, 그 결과로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데?'라고 묻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
한동안은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게 했다. 마침 코로나가 터져서 할 수 없었기도 했고.
그러면서 아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관찰하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덤블링을 마스터하고 싶어 하길래 체조 학원을 보내주었고, 영어유치원을 싫어한 이유가 책 읽고 글씨를 쓰는 것이 싫어서일 뿐 사람들과 어울려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영어유치원 출신들은 거의 가지 않는 스피킹 위주의 쉬운 학원을 보냈다(돈 아까움을 극복하느라 힘들었다. 휴휴). 코로나로 일 년이나 EBS 온라인 수업만 들은 게 걱정이 되어 최근에 학교 진도를 중심으로 한 보습 수학학원에 보내고 있다.
내가 지금 선택한 게 맞는지 틀린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맞고 틀렸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계속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함께 하기 위하여.
이 책은 내가 바깥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아이에게 돌리고, 아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조금씩 기억해 낸 나의 어린 시절과 엄마가 되고 난 다음의 시행착오, 그리고 좌충우돌하면서 아이와 동반성장을 해 나가고 있는 순간의 기록들이다. 현재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