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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08. 2021

아이와 집안일

공부 이전에 가르쳐야 할 것

나는 자로 잰 듯이 반듯한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커다란 상을 펴놓고 교과서들을 꺼내어 그 위에 주욱 늘어놓았다. 숙제를 하고 예습, 복습을 마치면 골목길로 나가서 실컷 고무줄이나 얼음땡을 하고 놀았다.


그 사이 짬짬이 집안일을 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빗자루를 들고 안방을 싹싹 쓸고, 걸레를 네모반듯하게 접어 구석구석 닦았다. 가끔은 아빠, 엄마의 커피를 타고,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했다. 좀 더 큰 다음에는 식탁에 수저를 놓는 일도, 식사 후 설거지도 내 담당이 되었다. 동생과 서로 경쟁하듯이 아빠의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았던 기억도 난다.


집안일은 그럭저럭 할 만했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구두를 닦는 일이었다. 동그랗고 납작한 약통 뚜껑을 열고 손에 구두약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레 구둣솔에 살짝 바른 뒤 왼손에는 아빠의 구두 한 짝을 끼고, 오른손으로 솔을 쥐고 박박 문질렀다. 구두약이 가죽에 충분히 배어들면 그다음에는, 한껏 늘어나서 쓸모를 다한 아빠의 러닝셔츠 조각을 들고 광을 냈다. 어디선가 불광이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하는 거지? 라이터로 지지면 되는 건가?'라고 진지하게 궁금해했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구나.


하기 싫은 것도 있었다. 특히 수저 놓는 일은 지긋지긋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지겨웠나 싶다.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가족 구성원으로서 내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해냈다.


집안일에서 면제된 것은 중학교 2학년 가을 무렵, 특목고 입시학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학교 끝나고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학원 라이프를 살면서 집안 청소나 설거지를 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내 방 청소를 할 시간,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할 시간, 하다못해 밥 먹고 난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을 시간은 충분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것들도 하지 않게 되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 모두 아무 말하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힘들겠다고 내 방으로 간식을 갖다 나르고, 내가 학교 간 틈에 내 방 청소를 말끔히 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만 잘하지 다른 건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 되었다. 어쩌다 집안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공부 못하는 자식을 둔, 질투 많은 친척 어른이 짐짓 걱정하는 척 '밍이가 공부만 할 줄 알지 세상 물정 몰라서 어떡하냐'라고 말하면, 엄마는 '우리 애가 지금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크면 다 알아서 한다. 그리고 여자애가 집안일 잘하면 일복만 많아지지 뭐 좋은 거 있다고.'라고 응수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내가 나설 계제가 아니어서 잠자코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몸은 편했으니까.


photo by radek-skrzypczak on unsplash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기 시작한 이유는 특별히 교육적인 목적 때문은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삼시세끼 돌밥 돌밥 라이프(돌아서면 밥 차리고, 또 돌아서면 밥 차리는 삶)를 살다 보니, 아이가 밥 먹고 난 뒤 어질러진 식탁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거라도 거들어주면 좀 편할 것 같았다. 자기가 먹은 그릇 정도는 스스로 치우는 사람으로 기르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육아서들을 읽다가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해온 아이들은 책임감, 자신감은 물론 공감능력까지 길러진다고. 그것을 보고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집안일에서 해방된 나는 행복했을까? 아니었다. 묘하게 불편했다. 몸은 이미 청소년인데, 마치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처럼 무능해진 기분이었다. 사실 이것은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보고 알게 된 것일 뿐 그때는 그저, 단단해야 할 발밑이 자꾸 무르게 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생활의 절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의 말이 맞았다.


거기에 덧붙여, 정말 중요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공부에 전념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집안일을 면제받은 나는 그것을 은연중에 '너의 인생에서는 공부가 전부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에도 공부가 주된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집안일을 나누어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당받은 의무도 지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라고 시킬 때면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중요한 것,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이후, 내 물건을 정리하고, 내가 먹고 마신 자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응당 내가 해야 할 행위마저 남의 손을 빌림으로써, 그 이유가 '공부에 전념해야 하니까'가 되면서, 내 인생에서 공부 외의 다른 것들은 사라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다음, 나는 유일한 존재가치를 잃었다는 생각에 긴 방황의 터널로 들어가야 했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집안일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이겠지만, '넌 그저 공부만 잘하면 돼'라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의 영향은 끼친 게 분명했다. 공부만 하라고 온갖 배려를 받았는데, 유일한 미션에서 실패한 무능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실 공부는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제발 아이의 인생에서 공부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당신은 '나는 그러지 않고 있다'라고 믿을 것이다.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성적과 관계없이 그저 피곤한 나를 배려하신 것뿐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내버려 두심으로써 말이 아닌 태도로 '공부만이 가치 있다'라고 알려주신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당신이 아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주일예배를 빠져도 된다고 허락하거나, "엄마, 물!" 하는 소리에 잽싸게 달려간다면 마찬가지의 결과가 될 것이다.


당신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서적]

이영숙 박사의 성품 대화법(이영숙)






https://brunch.co.kr/brunchbook/mycho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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