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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13. 2021

아이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

모범생의 딜레마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 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엄마가 내게 말했다.


"유정이네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유정이가 키도 작도 행동도 느려서 걱정된다고, 밍이가 잘 좀 보살펴달라네."


유정이는 또래들에 비해 동생 같은 아이였다. 나에게 '반장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 특별히 문제가 있거나 발달이 뒤쳐진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잘 좀 보살피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친구들과 놀 때 끼워주라는 말인가? 숙제를 도와주라는 말인가? 학교에 가서도 유정이가 신경 쓰여 편치 않았다. 나는 동갑내기 아이의 후견인이 된 기분이었다.


몇 주 정도 마음의 부담을 안은 상태에서 유정이를 관찰했는데, 자기 나름대로 친구들을 사귀며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으나 찜찜한 마음은 여전했다. 숙제를 받았는데 안 한 것 같은.




한 두 달이 지나고 나서 반의 진짜 문제아가 드러났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다소 공격적이라 다른 애들도 다 기피하는 여자애였다. 이름도 생각난다. 홍양희.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와 짝을 지어 자리를 정하라고 했다. 나는 단짝이었던 부반장과 앉았고, 나머지 아이들도 저마다 짝을 찾았다.


홍양희만 홀로 남았다. 담임선생님은 홍양희에게 누구와 짝이 되고 싶은지 물었고, 그 애는 나를 지목했다. 잠깐 고민한 담임선생님은 나와 부반장에게 이제부터 너희는 홍양희와 번갈아 짝을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홍양희는 등 뒤에 붙은 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담임선생님이 명시적으로 내게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반장인 네가, 모범생인 네가, 친구 많은 네가 홍양희를 챙겨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었던 것 같다. 조별 활동도 항상 우리 조에 넣었다. 담임선생님 입장에서는 그 애를 내게 붙여놓으면 편했을 것이다.


나는 홍양희가 싫었다. 그 애가 늘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 하나 달랑 가져오고, 옷도 남루하고 냄새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애는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아서 거칠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다. 항상 준비물도 빼먹고, 조별과제도 안 해와서 조장인 내가 그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야 했다. 심지어 내 돈도 훔쳤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애를 싫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를 차별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에게 실망할 거야.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도덕 시간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내 등의 혹처럼 지고 다녔다.


언젠가 조별과제로 물옥잠을 관찰하는 수업이 있었다. 홍양희가 물옥잠을 사 오기로 했다. 맨날 열외였던 그 애가 어떻게 그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애가 사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수업 당일 역시 홍양희는 빈 손으로 교실에 나타났고, 나는 다른 아이에게 '선생님이 찾으시면 물옥잠 사러 갔다고 말해달라'라고 한 뒤 교실을 나섰다. 시장통을 돌면서 물옥잠을 찾으러 다녔다. 도중에 비가 왔지만 피하지도 않고 맞으며 계속 돌아다니다 결국 빈 손으로 교실에 돌아왔다.


선생님은 비에 젖은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유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선생님께, 어른들께 대들면 안 된다, 늘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배운 나는, '당신이 나에게 떠넘긴 아이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photo by karim-manjra on unsplash


학년이 바뀌었고 또 반장이 되었다. 새로운 담임은 내게 과외의 무언가를 부담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도, 나는 어느새 새로운 반의 지진아를 돌보고 있었다. 3학년 홍양희와 같이 4학년 김미선은 집이 가난하고 사회성 발달이 늦었다.


나는 그 애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늘 그 애를 돌보는 일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가서 숙제를 봐주고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 그녀가 나에게 '밍이야, 나 공부 좀 아르켜죠.'라고 철자가 엉망인 편지를 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도 또 같은 조가 되었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애들에게는 예민한 사교의 장이 펼쳐졌다. 3학년 때 단짝이었던 부반장은 내가 홍양희를 등에 지고 있어도 따뜻하게 대해주었지만, 4학년 때의 친구들은 안정감을 주는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늘 우정과 시기, 질투, 따돌림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고, 등에는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김미선을 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이 외롭고,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짐스러웠던 것 같다.




선생님들은, 어른들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게 의외로 무관심하다. 너는 알아서 잘하고 있지? 별 문제 없지? 내가 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지우면 안되는 짐을 떠안기기도 한다. 너라면 할 수 있지? 네가 친구를, 동생을,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길 수 있지? 모범생도 그저 아이일 뿐인데, 그들은 마치 어른처럼, 자신의 동료처럼 대접하기도 한다.  


그런 무언의 눈빛 속에서 힘들어도 힘들다 말할 수 없고, 종국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안에 있는, 10세의 밍이를 포함하여.



[참고서적]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오제은)







https://brunch.co.kr/brunchbook/mycho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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