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때 우리 집에 못난이 삼 남매 인형이 있었다. 귀여웠지만 예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인형을 닮았다며 웃었던 기억도 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귀엽다는 뜻이었을 테지만 나는 싫었던 것도 같고.
어느 날 새로운 인형을 선물 받았다. 내 팔 길이 정도로 컸는데, 눈이 동그랗고, 갈색머리를 구불구불 말고 있고,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못난이 인형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너무너무 예뻤다.
그 날부터 그 인형은 나의 보물이었다. 닳을까 봐 아까워서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나는 그것을 장식장 위에 올려두고 매일같이 하염없이 쳐다만 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Barbie™ 2016 Holiday Doll
어느 날 사촌 고모가 나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한참 잘 놀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갑자기 여동생이 인형을 달라고 울고불고 떼쓰기 시작했다. 고모가 안 된다고 계속 만류하는데도 바닥에 드러누워 소리를 질러댔다.
동생을 달래다 지친 고모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인형을 양보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나는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서 있기만 했다.
고모는 계속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점점 궁지에 몰린 쥐의 심정이 되었다. 죽을 것만 같아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나 싫다고 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영원 같은 시간이 흘러도 고모의 말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는 시원한 표정으로 내 인형을 동생 손에 쥐어주고 떠났고, 고모가 가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이 바보야! 안 된다고 하지 그랬어!"라고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나는 매우 분노했다. 당신이 나를 지켜줬어야지. 어른 말씀에 순종하라고 가르친 건 당신이잖아.
고모도 미웠다. 그 자리에 있는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고모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기 자식 비위 맞춰주려고 내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날이 지난 뒤에도 나는 가끔씩 인형을 생각하면서 흐느꼈다. 너무 괴로워서 얼른 이 일이 잊어버려지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그렇게 애를 써서 결국 잊었다. 잊은 줄 알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해부터 아이 친구들을 집에 자주 초대하기 시작했다. 그중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함께 잘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면 꼭 내 아이가 가진 장난감을 탐내면서 가지고 싶다고 조르고, 그게 안 되면 빌려달라고 떼를 썼다.
외동인 데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커 온 아이는 늘 장난감이 넘쳐났고, 자기 물건 아낄 줄을 몰랐다. 친구들이 달라는 대로 거저 주거나 빌려줬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불편함이 일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너무 풍족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 아닌가, 아이를 버릇없게 키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양육적 관점의 걱정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이 점점 더 괴로워지던 어느 날, 놀러 온 친구가 또 장난감을 달라고 했다.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렸다. 매우 아끼던 것이었다.
대답을 잘 못하는 아이와 친구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펼쳐졌고, 보다 못한 친구의 엄마가 끼어들어 중재를 시도했는데 그러면서 내 아이에게 건넨 말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소망(우리 아이)아, 친구가 이거 너무 가지고 싶어 하니까 잠깐 빌려주는 게 어때?"
떼쓰는 네 자식 버릇을 고쳐야지 왜 내 자식한테 양보를 강요하고 그래?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갑자기7세 때 인형을 빼앗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순식간에 그 시절 인형이 놓인 장식장 앞으로 소환되었고, 옆에는 고모와 사촌동생이 있는 기분이었다. 그 작은 밍이는 '싫은데 싫다고 말하지 못한 것,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상황에서 아이를 끄집어낸 다음 물었다. "소망아, 이거 친구한테 빌려주고 싶어?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아이는 고개를 저었고, 나는 아이 친구에게 안 된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관계를 읽는 시간'의 저자, 문요한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절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아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예!" 뿐만 아니라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도 가르쳐줘야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싫은 것을 싫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결정권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아주 많다'라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순간에도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무의식 속에서 분노만 키워왔다.
나는 이제 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No라고 말해도 돼. 다만 정중하게."라고 가르칠 수 있다. 새로운 나는, 그리고 내 아이는 예전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 사실이 말할 수 없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