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1교시 전 자율학습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칠판에 커다랗게 '1부터 100까지 쓰기'라고 적으신 뒤 "선생님 올 때까지 이거 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교실에서 나가셨다.
아이들은 동요하며 웅성웅성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쓰기 능력으로 자습시간 내에 1부터 100까지 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모두들 시작했으나, 곧이어 하나둘씩 그만두는 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걸 어떻게 써? 시간 내에 다 못써."라고 말하면, 그 옆의 친구가 "나도 관둘래." 하는 식이었다. 결국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손을 놀렸다. 처음에 '다 쓸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긴 했으나 쓰기 시작하면서 이내 그 걱정은 접었다. 중간중간 팔이 아프고 손이 저려올 때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으나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면서 계속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이 교실문을 드르륵 열며 돌아오셨을 때 나는 100이라는 숫자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거 다 쓴 사람 손들어 봐."라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내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힘차게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선생님과 반 아이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선생님조차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고 계셨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선생님이 우리가 이 과제를 끝까지 수행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안 해도 되는 거였나?'
하지만 나는 해냈고, 그런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성취를 사람들이 경이롭게 바라보는 쾌감을 처음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것들을 이루었으나 이 순간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첫번째 성취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후 나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기대하고, 해내지 못하면 실망시킬까 두려웠던 적이 많다.
그러나 나의 이 첫 성취만큼은 내가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채찍질도 없이 오로지 '할 일이니까 한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해 낸 것이었다. 저린 손을 부여잡고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는, 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루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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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한 모범생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근과 채찍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까?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방정리를 잘 하면 상으로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방정리와 같이 당연히 해야할 일에 보상을 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남편의 의지가 단호했기에 말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이는 일주일 동안 방정리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고 기뻐했다. 아빠는 "장난감을 얻고 나서도 방정리는 계속 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라고 말했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점 정리를 안 하고 흐트러진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보상받기 위해서 한 행동인데 얼마나 오래 가겠어.
어느 날 저녁 아이가 또 방을 치우지 않자 농담삼아 말했다. "장난감 받았다고 이제 안 치운다 이거지?"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했다. 이리저리 달랜 끝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장난감과 상관 없이 잘 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데, 엄마는 잘할 때에는 안 보다가 잘못할 때에만 혼을 내.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보상이 없이도 스스로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 아이의 명예를 위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는 타고난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딱히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도시키면 무난히 하는 것도 아이는 거부하며 따르지 않을 때가 많다. 주위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통한다.
그런 내 아이에게도 스스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니, 그것을 위해 아무 보상이 없어도 노력하다니.
그리고 가만히 돌이켜보니 장난감을 받고 난 다음에도 한참 동안 아이는 스스로 방을 정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이상의 보상이 없어도. 나는 그것을 알아봐주지 못했다. '얼마나 오래 가겠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은연중에 아이의 실패를 기대했다.
아이들은 누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스스로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 어려운 것을 해내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것을 알아보고 응원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적 동기를 키워주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