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안녕 뒤로 한식의 에너지를 채우다

페루_쿠스코

by 상현



쿠스코에도 한식당이 있다. 한식당을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엔가 에너지가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한식을 먹으며 말 그대로 밥심을 채운다. 아르마스 광장 북쪽에 있는 한식당 ‘사랑채’는 그동안 만나온 한식당 중에 가장 한식다운 한식을 대접하는 식당이었다. 힘을 써야 한단 이유로 마추픽추에 가기 전에 한번 갔고, 힘을 썼단 이유로 마추픽추에 다녀온 이후에 한번 갔다. 그리고 오늘, 쿠스코의 마지막 저녁, 다시 사랑채를 찾았다. 이번에는 육체적인 에너지가 아닌 정신적인 에너지를 채우고 싶었다.


쭉 같이 다닐 것 같았던 H에게 사정이 생겨 쿠스코에서 안녕을 말해야만 했다. 쿠바의 마지막 날 밤, 우연히 같이 술을 마시고 콜롬비아에서 다시 만나, 에콰도르를 거쳐 페루까지 달포를 같이 다녔다. 많은 것을 같이 보고, 하고, 느끼면서 웃고, 떠들고, 공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별을 함께 한다.


마음먹고 삼겹살을 시켰다. 다른 메뉴보다 3배는 비싸고 한국에 비해서도 비싸지만 이날만큼은 기분을 내고 싶었다. 삼겹살에 빠지면 서운할 소주 한 병까지 통 큰 소비를 했다. 냉동 삼겹살의 풍미가 났지만 그럭저럭 마지막 만찬을 풍성하게 채워줄 한 상이 차려졌다. 주거니 받거니 지난 여행의 순간을 곱씹었다. 지글지글 삼겹살 익는 냄새에 지난 기억들이 더욱 맛있게 포장됐다. 간단하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기도 했다. 주문한 고기들을 다 먹어갈 때쯤 한 병의 소주도 다 비워졌다. 술이 약한 둘은 겨우 한 병을 나눠마셨음에도 얼굴이 벌게졌다.


아쉬운 식사가 끝났다. 다시 이런 음식을 먹어보려면 한참이 걸리겠지. 그보다 그와 다시 같은 밥을 먹으려면 한참이 더 걸리겠지. 한참이 더 걸리는 건 좋은데 그를 다시 볼 수는 있을지. 즐거웠기에 더욱 아쉬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인사를 했다. 나는 푸노로 가고 그는 조금 더 머문다. 지난밤 먹은 삼겹살이 그의 남은 여행에 에너지가 되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 혼자인 나의 여행에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뿌리가 되기를 바란다.


캡처.JPG

쿠스코 사랑채 https://goo.gl/maps/sWAgU4X5y3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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